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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9월 20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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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남사예담촌서 ‘지구살리는 염색’ 연구 박영진 씨

천연염색 외길 20여년… 173가지 ‘세상 모든 색’ 찾아내다

  • 기사입력 : 2021-09-08 21:2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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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자락에서 천연염색 연구활동에 몰입하고 있는 박영진(50) 천연염색 연구가.

    그는 재료부터 완성까지 화학약품이 전혀 첨가되지 않은 친환경 천연염색으로 지구를 살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 단성면 남사예담촌에서 그가 운영하는 ‘순이진이 갤러리’를 찾으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색색의 긴 천이 서로 어울려 나부끼는 모습이다. 다채로운 천연염색 천 중에서도 하늘을 꼭 닮은 쪽빛 천자락은 그 매력이 상당하다. 어느 누가 봐도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쪽빛 천은 만든 이의 조예가 상당하다는 것을 미뤄 짐작하게 한다.

    자연이 선물한 동백나무와 소나무, 홍화와 소목, 오리나무와 도토리껍질, 콩대와 굴껍질, 마당 앞 매실나무에서 난 소출로 담근 식초와 손수 만든 술·조청이 눈앞에 있는 천연염색 천을 만드는 재료라니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젊은시절 환경운동가였던 어머니
    성철 스님 생가 옆 겁외사 인근서
    숯 등 활용 천연염색으로 친환경 삶
    1999년 일 돕다 평생 업으로 삼아

    일 제대로 해보려 전국 공방 찾았지만
    대부분 화학 매염제 사용해 실망
    동의보감 등 옛 문헌 뒤지며 공부
    동백나무 태운 잿물 알게 돼 업 이어

    “지리산 약재는 훌륭한 천연 염제”
    타향 산청에 부인과 함께 뿌리내려
    갤러리 열고 색 찾고 입히는데 몰두
    전통 천연염색 대중화에 최선

    천연염색 스카프를 들어보이는 박영진 연구가와 그의 부인 김옥순씨.
    천연염색 스카프를 들어보이는 박영진 연구가와 그의 부인 김옥순씨.

    ◇고문헌과 발품으로 찾아낸 173가지 전통색

    박 대표는 아내 김옥순씨와 함께 옛 문헌에 전해지는 전통방식을 그대로 따라 스카프와 손수건, 컵받침 등 비교적 단순한 제품에서부터 손가방과 침구류, 생활복 등 다채로운 천연염색 제품을 만들고 있다.

    박 대표는 지난 1999년 환경운동가로 활발히 활동했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천연염색을 시작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의 어머니는 환경운동가로 활발히 활동했던 젊은 시절 염색공장이 밀집해 있는 공단에서 폐수가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보고 삶 전체를 친환경으로 바꿔 나가셨다고 한다. 가장 먼저 실천한 일이 자신의 옷부터 천연염색한 옷으로 입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성철스님 생가가 있는 겁외사 인근에서 황토와 숯 등을 활용해 본격적인 천연염색업을 시작했다.

    그러다 잠시 직장을 쉬고 있던 박영진 대표가 어머니의 일도 도울 겸 천연염색을 배우게 되고 그것이 평생의 업이 됐다. 덩달아 아내 김옥순씨 역시 천연염색의 길을 함께 걷게 됐다.

    박 대표는 “이왕 마음을 먹은 일이니 제대로 된 전통 천연염색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전국 각지의 천연염색 공방을 수소문해 배움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와 제가 생각하는 천연염색의 가치에 부합하는 곳을 찾지는 못했습니다”라고 기억했다.

    천연염색 천을 살펴보는 박영진 연구가.
    천연염색 천을 살펴보는 박영진 연구가.

    대부분의 천연염색 공방들은 발색이 어렵다거나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화학약품으로 된 매염제(옷감과 연료를 결합시켜 발색하도록 만드는 매개 약제)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동의보감’은 물론 조선시대 백과사전인 ‘이수신편’, ‘규합총서’, ‘산림경제’ 등 옛 문헌을 찾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문헌에 나온 전통 염료 재료를 찾아 전국을 누볐다. 염료가 있어도 천에 그 색을 입히는 일은 또 다른 고난의 연속이었다. 가장 고민이 많았던 것은 색을 낼 때 꼭 필요한 매염제를 구하는 일이었다.

    박 대표는 “백반이 색을 내는 매염제로 쓰인다는 말을 듣고 약국에 물어보니 판매되는 백반 역시 화학약품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문헌을 뒤지며 공부를 하다 보니 동백나무를 태워 얻은 잿물로 매염제 성분을 얻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길로 동백나무를 구하러 이곳저곳을 다녔지요. 그러나 통영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 지금까지 매염제로 쓸 수 있는 동백나무를 공급받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한 인연입니다”라고 자랑스레 말을 이었다.

    사실 박 대표는 산청이 고향이 아니다. 그런데 왜 산청에 자리를 잡았는지 궁금했다.

    그는 “지리산 곳곳에서 나는 한약재는 훌륭한 천연 염제입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 갤러리 앞마당에 있는 수백년 된 매화나무의 매실은 염색에 쓰이는 식초를 만들기에 안성맞춤 이지요. 어머니의 산 지리산이 주는 모든 것이 천연염색의 재료가 됩니다. 제가 산청에 터를 잡은 것은 어찌보면 필연이지요”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13년을 색을 찾고 입히는데 몰두했다. 그 시간 동안 찾아내고 만들어낸 색이 173가지였다. 옛 문헌에서 전해 내려오는 ‘세상의 모든 색’이었다.

    남사예담촌 ‘순이진이 갤러리’.
    남사예담촌 ‘순이진이 갤러리’.

    ◇문체부·관광公, 전국 ‘으뜸 관광두레’ 선정

    선조들이 남긴 전통방식으로 173가지에 달하는 색을 찾고 입히는 방법을 체득했지만 여전히 천연염색은 고되고 지난한 작업이다.

    박 대표는 “쪽빛 염료는 염색의 가장 기본이 되는 염료입니다. 이 재료 하나만 해도 전통 방식으로 만드려면 1년을 훌쩍 넘는 시간이 걸립니다. 모든 재료를 자연에서 얻다보니 4계절에 맞춰 재료를 구해야 합니다. 또 염료로 만드는데도 시간과 품이 많이 들지요. 덕분에 손톱과 손바닥은 항상 새카맣지만 피부가 상한다거나 그런일은 전혀 없습니다. 자연 그대로니까요”라고 말했다.

    이러한 정성과 노력은 차츰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있다. 2011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선정, 2013년 (사)한국전통염색협회 전통염색체험 장인 취득, 2017년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수상, 2018년 통도사 서운암 천연염색축제 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2월에는 전국의 관광두레 주민 사업체 가운데 우수한 주민사업체를 집중 육성하는 ‘관광두레 으뜸두레’에도 선정됐다.

    박영진·김옥순 부부는 옛 문헌에서 전해 내려오는 ‘173가지 세상의 모든 색’을 구현하겠다는 의미를 담아 ‘산청173’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뜻을 같이하는 지역민들과 함께 주식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전통 한옥과 문화재로 지정된 옛 담장이 잘 어우러진 남사예담촌에서 천연염색 체험과 전통 공예품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지역사회와 함께 ‘지구를 살리는 착한 천연염색’을 널리 알리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수년 전부터는 산청천연염색연구회 회원들과 함께 매년 함께 만든 작품을 동의보감촌과 남사예담촌 등에서 전시, 전통 천연염색 기법이 주는 자연의 미를 대중화하고 있다.

    박영진·김옥순 부부는 천연염색과 남사예담촌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남사예담촌 전체가 전시·체험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밝혔다. 박 대표는 “우리 남사예담촌에는 천연염색연구가인 저를 비롯해 기산 박헌봉 선생의 제자이신 최종실 명인, 산수화의 대가이신 이호신 화백, 남사예담촌이 너무 좋아 산청으로 귀촌한 한의사 등 풍부한 인적자원이 있습니다”며 “여기에 문화재이자 지금도 한옥 민박으로 이용되고 있는 사양정사 등 전통고택, 마을주민들이 운영 중인 한방약초 족욕체험과 한복입기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 우수한 전시·체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잊혀져 가는 전통 천연염색이 미래 세대에게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도 내비쳤다.

    “우리 전통 한약제는 대부분 우수한 천연 염색재료로 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000여종의 약초가 자생하는 지리산 청정골 산청군은 천연염제를 구하기에 최적지 이지요. 이처럼 우수한 지리적 여건에 천연염색을 배우고자 하는 인적자원이 더해진다면 전통 천연염색 대중화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글·사진=김윤식 기자 kimys@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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