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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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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영웅을 필요로 하는 불행한 나라여- 이상준(한울회계법인 대표 공인회계사)

  • 기사입력 : 2021-09-05 20: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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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42년에 77세로 사망한 갈릴레오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자신보다 100년 앞선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지동설을 신봉했고, 천체망원경을 발명한 과학자이다. 그런 그가 지동설을 주장하다가 종교재판을 받게 된 거다. 당시 기독교의 철칙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었고 하느님은 지상의 창공에 존재했기 때문에,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은 하느님의 위상을 추락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독교는 기를 쓰고 천동설을 고집했던 것이다. 갈릴레오는 목숨을 건지려고 재판정에서는 지구가 돌지 않는다고 무릎을 꿇었으나,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렸다는 (지어낸) 일화다.

    갈릴레오보다 40년 이전인 1600년에 지동설을 끝까지 주장하다 죽은 브루노라는 과학자의 최후가 처절했음을 갈릴레오는 알고 있었다. 브루노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 혀가 잘렸다거나 혀에 못이 박혀 사망했다고 한다. 이 두 사건을 대비시켜 희극화한 것이 브레히트가 쓴 희곡 ‘갈릴레오의 생애’이다. 여기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영웅이 없어서 불행한 나라여!”(갈릴레오의 제자가 스승의 변절을 비난한 말이다).

    갈릴레오는 이렇게 되받아친다. “영웅을 필요로 하는 불행한 나라여!”(영웅이 등장해야만 수습이 될 만큼 곪아 있다는 뜻이다)

    ‘시대가 영웅을 만들어낸다’는 말도 있다. 나라든 조직이든 원칙에 충실하고 물 흐르듯 평온하면 영웅이 필요 없는 거다. 이순신도, 잔다르크도, 3·15의거도, 5·18광주혁명도, 촛불혁명도 비 상식적인 현실 때문에 일어선 혁명이었다.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는’ 멋진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일까? 정치든, 외교든, 국방이든, 경제든, 사회든, 문화든, 교육이든…. 모든 영역에서 상식과 공정, 진실성이 가장 중요하게 작동하는 나라다. 내 편 네 편으로 편 가르기를 하지 않는 나라, 핵심 요직에 (우리 편이 아니라 여당 야당은 물론이고 재야에서든 심지어 외국인이든) 그 직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선택되는 나라,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는 발붙일 곳이 없는 나라, 권모술수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나라, 정치학적 온갖 술수와 보여주기 식 쇼가 아니라 진실이 제일 강조되는 나라, 권력 위에 군림만 하는 게 아니라 (이순신 제독처럼) 앞장서서 난관에 맞서는 지도자들로 구성된 나라, ‘국민’을 위한다고 ‘혀’로만 말하는 대신 언론이나 국민들이 함부로(?) 비판할 수 있는 나라(국민의 눈과 귀를 틀어막는 언론중재법 개정 사태를 보라!), 외국에서도 존중하는 나라, 대통령의 경우 퇴임 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예외 없이 퇴임 후 비극적 삶을 살았다. 해외 도주, 저격, 자살, 본인 또는 가족·측근의 감옥살이 중 하나였다.

    이미 160년 전에 링컨 대통령은 말했다. “일부 국민들을 오랜 세월 속이는 것도 가능하며, 전 국민을 잠시 속이는 것도 가능하지만, 전 국민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지금은 비밀이 없는 시대다. ‘눈 가리고 아웅’할 수 있는 시대는 벌써 지나갔다. 이 핑계 저 핑계 둘러댄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으로 돌변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보지 않았는가.

    “사람에 충성하지 않습니다”라는 말로 검찰총장직을 시작한 윤석열과, “통치 철학이 아니라 통치행위의 절차적 공정성을 지적한 것”이라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이 두 사람이 임명직 공직을 던져버리고 정치에 발을 들인 것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이 두 사람은 주군을 배신한 인간인가? 주군이 자초한 영웅인가?

    인간 됨됨이로만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진정성은 정치학이나 통치 방식보다 중요한 밑바탕이다. 자손만대에 길이길이 물려줄 ‘영웅이 필요 없는 나라’는 과연 언제쯤 올 것인가. 아, 영웅을 필요로 하는 불행한 나라여!

    이상준(한울회계법인 대표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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