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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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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걷다 보면- 강지현(편집부장)

  • 기사입력 : 2021-08-18 20:3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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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남자가 있었다. 은퇴 후 삶의 의미를 잃었다.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자괴감에 시달렸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 만큼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살기 위해 걸었다. 그러다 걷기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62살에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실크로드 1만2000㎞를 여행했다. 오직 두 발로. 그리고 그는 살아났다. ‘나는 걷는다’를 쓴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이야기다. 그에게 걷기는 구원이었다.

    ▼걷기는 느림이 주는 선물이다. 걷다 보면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세상이 보인다. 평소엔 안 보이던 꽃과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지나던 길냥이의 눈인사에 미소 짓고, 하늘과 구름, 바람에 마음을 뺏기기도 한다. 아이들 웃음소리, 풀벌레 소리가 새롭다. 한밤 산책길 우연히 보름달을 만날 땐 저절로 얼굴이 환해진다. 머리가 복잡할 때나 마음이 힘들 땐 걷기만 한 게 없다. 걷기는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걷기는 자유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날 기분 따라, 컨디션에 따라 속도와 거리를 조절하면 그뿐, 걷고 싶은 만큼 마음 내키는 대로 걸으면 된다. 매일 여행하듯 걸으면 매일이 즐겁다. 장비가 필요 없으니 돈도 들지 않는다. 부상 위험도 적다. 게다가 열심히 하면 살도 빠진다. 불면과 우울, 스트레스도 없앤다. 코로나 시대 이보다 좋은 운동이 또 있을까.

    ▼걷기는 정직하다. 몸을 움직인 만큼, 딱 그만큼만 앞으로 나아간다.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건 아니다. 지금 당장 몸을 일으켜 한 걸음 내딛는 것. 이것이 걷기의 시작이자 전부다. 책 ‘걷는 사람, 하정우’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 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를.” 당신 또한 그러한 사람이길 소망한다. 코로나라는 재앙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걸어 나가는 사람.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졌다. 걷기 딱 좋은 계절이 왔다.

    강지현(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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