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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78년 만에 홍범도 장군의 귀환- 이현근(창원자치부 부장)

  • 기사입력 : 2021-08-16 20:4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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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항일독립투사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광복절인 15일 고국으로 돌아왔다. 홍 장군이 광복을 2년 앞두고 이역만리 카자흐스탄에서 쓸쓸하게 숨진 지 무려 78년 만이다. 홍 장군의 유해는 17일까지 대국민 추모 기간을 거쳐 18일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홍 장군은 강원도에서 포수를 하며 평범하게 살았지만 일제가 한국인들에게 무기를 지니지 못하게 단속하면서 의병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일본군 관사와 순사주재소를 공격하고, 일본인 금광을 습격해 금괴를 빼앗아 군자금으로 사용하는 등 ‘하늘을 나는 홍범도’라 불리기도 했다. 이후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해 1920년 6월 만주지역에 있는 봉오동에서 독립군을 이끌고 일본군을 대파하고, 청산리 전투에도 참가했다. 독립운동을 위해 소련군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에서 생을 보내게 된다.

    ▼홍 장군은 독립운동의 영웅이었지만 남북한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남한은 그가 공산당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북한은 홍 장군의 뛰어난 항일행적이 김일성의 항일과 비교될 것을 우려해 의도적으로 폄하했다. 그는 항일운동 일선에 있었지만 머슴 출신이라는 이유로 주류에서 밀리고, 말년에는 오갈 데 없이 고려인 극장에서 경비를 서거나 표를 파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다 세상을 떠났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으로 해외에서 유해봉환이 이뤄진 독립유공자는 143분이다. 아직까지 국외 지역에 안장돼 돌아오지 못한 독립유공자 묘소는 159기에 달한다. 그러나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고 어느 낯선 이국땅에 묻혀 돌아오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은 훨씬 많을 것이다. 홍 장군 같은 명성 있는 운동가조차 유해 귀환에 78년이 걸렸다. 우리는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을 누리지만 그들의 고되고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는 데는 지나치게 인색하다.

    이현근(창원자치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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