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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개혁의 역사- 허충호(논설실장)

  • 기사입력 : 2021-08-11 20:3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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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안석은 지속가능한 왕조와 강력한 군사력을 확보하기 위해 개혁을 택했다.

    북송 재상이었던 그는 비대한 관료사회로 인한 재정난을 해소하고 125만에 이르는 대군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제도를 창안했다. 철이 바뀌어 햇것이 나오는 단경기(端境期)에 국가가 낮은 이자로 농민에게 곡식과 돈을 빌려줘 농민들을 고리대금업자의 착취로부터 구원하는 청묘법과 함께 면역·균수·시역법 등이 ‘대표 선수’다. 10%도 안 되는 사대부와 지주들이 70% 이상의 땅을, 그것도 겸병하는 상황에서 신법으로 통칭되는 개혁입법을 완성했지만 그의 신법은 끝내 사마광에 의해 없던 일이 됐다.

    조선 중종 재위 기, 조광조는 유자(儒者)의 이상정치를 꿈꾸었다.

    도학정치를 이상향으로 꿈꾼 그는 백성을 위한 정치구도를 만들기 위해 군주의 수신과 언로 확충을 강조했다. 과거제 대안으로 현량과를 도입하고 성리학적 사회윤리를 정착시키기 위해 소학이나 향약 보급을 추진했다.

    그러던 조광조도 ‘위훈삭제사건’을 빌미로 잡은 반정공신들의 상소로 귀양 간 지 얼마 안돼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했다. 이른바 기묘사화다.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이랄 수 있는 정도전은 성리학을 바탕으로 유교 정치를 실현하려 했다.

    그는 왕권 중심의 권력 구조와 중앙집권적 관료 체제의 기틀을 마련하려 했다. 고려 귀족들의 특권이었던 각종 토지제도를 혁파해 양민이 토지를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수도를 현재의 서울로 이전하고 궁궐의 이름도 유교적 덕목인 인의예지에 기반해 직접 지었다. 정도전의 도전은 역사상 가장 큰 개혁이라 할 수 있다. 조준 등과 추진한 토지개혁인 ‘계민수전법’, 즉 경작자 수에 따라 토지를 분배하는 이 법이 통과됐더라면 토지개혁 혁명이 완성됐을지 모른다. 어쨌든 정도전은 개혁 횃불을 든 지 7년 만에 이방원에 의해 살해됐다. 동시에 그의 개혁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앞서 언급한 3명의 출중한 인물들의 개혁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왕안석의 신법은 본질적으로는 지주 계급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었으나, 대지주·대상인·고리대금업자 등은 목전의 이익이 줄어든다며 반대한 게 가장 큰 이유다. 조광조의 개혁은 자신들의 기반 약화를 우려한 구세력의 견제가 이유다. 재상주의를 내세운 정도전의 개혁은 강력한 왕권주의에 숨은 기존 정치권의 거대한 벽을 넘지 못했다. 한 마디로 기득권층의 저항 때문이다. 이미 확고한 권력과 재력을 소유한 이들의 조직적 저항에 밀린 것이다.

    사회는 끊임없는 개혁을 요구하지만 그런 개혁이 부담스럽고 불쾌한 집단도 많다. 그들의 비율은 적지만 그들의 금력은 상대적으로 강하니 개혁과정은 늘 파열음을 낸다. 국왕이 직접 나선 개혁도 미완성으로 끝난 배경에도 그런 이해가 엇갈려있다. 개혁의 또 다른 아이러니는 기득권층의 특권을 혁파해 다수에게 분배할 경우 그중에서 또다시 제2, 제3의 기득권층이 생긴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돌고 도는 세상, 물레방아 인생’이다.

    눈을 돌려 작금의 상황을 보자. 예나 지금이나 할 것 없이 온통 개혁이다. 사법, 언론, 부동산, 세제 할 것 없이 개혁이 난무하고 있다. 부동산 투기를 문제로 공기업의 해체 수준으로 개혁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과연 무엇이 개혁인 지 헷갈릴 정도로 많은 개혁 논의가 진행되고 있고 일부는 이미 시행에 들어갔다. 그게 진정한 개혁이 될지, 말만 개혁 일지는 일정 기간이 지나 봐야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일이겠지만 ‘개혁 인플레’인 것 만은 확실하다.

    개혁 시도를 나쁘게 보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험적인 개혁이라면 곤란하다. 아니면 말고 식 개혁이 된다면 그 사이에 끼인 백성만 힘들다. 더욱이 매번 실패하는 개혁이라면 더욱 그렇다. 초 단위로 쏟아지는 개혁 입법이 진정 국민을 위한 일인가 곰곰 생각해볼 일이다.

    허충호(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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