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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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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892) 향금칭신(向金稱臣)

- 금나라를 향해서 신하라고 일컫다

  • 기사입력 : 2021-08-10 08: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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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60년 조광윤(趙匡胤)이 건국했던 송(宋)나라는 번영을 구가했다. 중국 역사상 경제적으로는 가장 번영하였고, 전 세계 경제규모의 80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부유했다.

    본래 조광윤은 소림사(少林寺)에서 무술을 익힌 후주(後周)의 대장군이었다. 송나라도 초기에는 국방력이 아주 강했다. 그러나 나라가 건국되고 나면, 무인들은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에 황제가 그 세력을 제거해 점점 문약해진다.

    게다가 제8대 황제 휘종(徽宗)은 사치와 향락을 일삼고, 극도로 도교만 믿다가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1125년 여진족(女眞族)들이 세운 금(金)나라가 송나라 서울 개봉(開封)을 포위하자, 얼른 아들 흠종(欽宗)에게 황제 자리를 넘겼다.

    황제 자리를 준다는데, 흠종은 밤낮으로 울면서 안 받으려고 발버둥치다가 마지못해 받았다. 그 2년 뒤에 서울은 함락되고 휘종, 흠종 두 황제와 황후, 비빈, 황자, 공주 등 250여명이 묶여 금나라로 끌려가 노비보다 못한 포로생활을 하였다.

    유일하게 생포되지 않은 휘종의 아들 조구(趙構)가 남쪽으로 가서 황제로 즉위하니, 곧 남송(南宋)의 시조다. 그래도 남송은 물산이 풍부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고, 악비(岳飛) 등 명장이 많아 충분히 북쪽의 실지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황제가 의지가 없었다.

    고종은 금나라의 침공이 진저리가 났고, 또 부친, 모친, 형님, 자신의 왕비, 후궁, 딸 다섯이 모두 금나라 포로로 있으니, 평화회담을 해서 가족을 돌아오게 하고 싶었다. 특히 생모가 가장 마음에 걸렸다.

    1142년에 ‘소흥화의(紹興和議)’라는 평화협정을 맺었다. 협정의 전제조건으로 금나라는 송나라에 계속 금나라 군대를 격파하는 명장 악비(岳飛)를 죽일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고종은 악비를 죽이고, 여러 명장들의 병권을 빼앗아 버렸다. 그렇게 맺은 화의에는, ‘송나라 황제는 금나라의 책봉을 받아야 하고, 신하라고 일컫는다’, ‘매년 은 25만 냥, 비단 25만 필, 미녀 몇 백 명을 바친다’ ‘금나라 황제의 조서(詔書)를 송나라 황제는 무릎을 꿇고 받는다’ 등의 내용이 들어 있었으니, 너무나 굴욕적이었다.

    그러나 고종은 얼른 성사시키려고 안달이 났다. 굴욕적인 합의를 하면, 곧 평화가 유지될 줄 알았다. 그러나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니었고, 금나라의 요구는 끝이 없었다. 조금만 요구대로 안 되면 곧 바로 협박, 침공이었다.

    지금 코로나가 날마다 1000명 이상 발생하는 판국에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대화 한다고 북한의 비위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김여정의 한 마디에 여당 국회의원들은 한미군사훈련을 연기 축소하자고 야단이다. 박지원 국정원장, 이인영 통일부장관, 정의용 외교부장관 등은 북한의 요청을 따르려 애쓰고 있다. 정말 어느 나라 장관인지 모르겠다.

    좀 굴욕적이라도 북한의 요청을 따르면, 평화가 오면 좋지만,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북한은 계속 그 다음 요구를 할 것이다. 후대 학자들이 남송의 고종을 역사상 가장 비굴한 황제로 비웃는다. 문대통령은 제발 그런 평가 안 받았으면 좋겠다.

    * 向 : 향할 향.

    * 金 : 쇠·황금·금나라 금.

    * 稱 : 일컬을 칭. * 臣 : 신하 신.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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