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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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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작업복에 핀 소금꽃은 향기가 없다- 표성배(시인·객토문학동인 회장)

  • 기사입력 : 2021-08-08 20:3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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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지에 따라 생각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면 행동도 달라진다.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에 따라 눈에 보이는 것들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보일 수는 있겠지만, 사물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왈가왈부 떠드는 게 사람 사는 일이다.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어린 시절 낮은 언덕에서 풀을 뜯는 소들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소를 앞세우고 논이나 밭을 가는 모습이 농촌의 일상이었던 시절, 누군가는 그 모습을 목가적(牧歌的)으로 바라보고, 누군가는 하루를 살아내는 삶의 고단함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어떤 표현이 ㄴ확한 표현이라 말할 수 없다. 보는 사람이 처해 있는 환경에 따라 달리 보이기 때문이다. 처지란 이렇게도 저렇게도 볼 수 있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를 말해준다.

    한낮 기온이 35도에 육박하고 있다. 이쯤 되면 일터는 펄펄 끓는다. 그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작업복에는 젖었다 말랐다를 반복하는 사이 곳곳에 소금꽃이 핀다. 이런 더위에서는 기계도 헉헉거리고, 망치 소리마저 기가 꺾인다. 그러나 이런 더위에도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냐고 노동자들은 말한다. 이런 노동자를 멀리서 바라보며 노동자가 흘리는 구릿빛 땀방울을 아름다움이라고 노동자의 전형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꽃은 꽃인데 노동자의 작업복에 핀 소금꽃은 아무리 피어도 향기가 없다.

    하루하루 목숨을 담보로 밥을 구하는 노동자의 삶에 대해 쉽게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은 계급 사회가 아니지만, 사회 곳곳에는 엄연히 계급이 존재한다. 당연히 노동자에게도 계급이 있다. 그 계급은 노동자가 만든 게 아니다. 그런데도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억울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1980년대도 그랬고 1990년대도 그랬지만, 2020년대 노동자는 알고 있다. 아직도 대다수 노동자는 저임금과 산업재해의 맨 앞줄에 서 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노동자도 있다. 이런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다른 이가 아닌 노동자들이 깊이 있게 생각해 봐야 한다. 자기가 어떤 처지에 서 있는지.

    표성배(시인·객토문학동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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