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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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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청와대 입장은 없습니다”- 이상권(서울본부장)

  • 기사입력 : 2021-08-03 20:3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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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12월 1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특별기자회견을 열었다. 불법 대선자금 모금과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수사 중인 안희정·이광재씨 의혹에 사과했다. 이들은 ‘좌(左)희정 우(右)광재’로 불린 노 대통령 최측근이다. 노 대통령은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의 대선자금 내지 비리 문제로 심려를 끼쳐 송구스러운 말씀 드리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이런 의혹에 시달리지 않는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철저하게 한다고 노력했지만 그렇지 못했고, 그렇게 해서 국민께 부끄러운 모습이 돼 있어 미안할 따름이다”고 했다. 대선 캠프에서 설령 참모가 벌인 일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후보에게 도의적 책임이 귀결되는 건 정치권 불문율이다. 정치행위는 결과론에 방점을 찍는다. ‘정치인은 선(善)한 동기만으로 행위의 도덕성을 평가하면 안 되고, 행위가 가져온 결과에 대해 엄정하게 책임져야 한다.’(직업으로서의 정치. 막스베버)

    지난 대선 과정에서 벌어진 ‘여론 조작 사건’으로 김경수 경남지사가 직을 잃고 수감됐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을 도울 목적이었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일명 ‘드루킹’으로 불린 김동원씨 일당과 공모해 2016년 11월부터 자동화 프로그램(매크로)인 ‘킹크랩’으로 댓글 여론을 조작한 혐의(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다. 대법원은 지난달 21일 상고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 전 지사는 형기를 채운 이후에도 5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대권 주자 반열까지 올랐던 그에겐 ‘정치 사망 선고’나 다름없다.

    김경수는 대선 과정에서 문 대통령을 수행하고 대변한 ‘복심’이었다. 문 대통령은 침묵하고 있다. 청와대는 단 10글자의 짤막한 답변으로 갈음했다. “청와대 입장은 없습니다.”

    김경수는 법원 판단에 억울함을 토로했다. 대법원 판결 전날 대법관에게 1만86글자에 달하는 최후 진술문을 보냈다. 유죄 확정 직후 공개한 진술에서 자신은 드루킹 일당에게 이용당한 ‘희생양’이라고 항변했다. 그는 2002년 노 대통령 대선 출마 때 선거대책위 전략기획팀 부국장을 맡았다. 2017년 문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는 선거대책위 공보 특별보좌관 및 수행팀장이었다. 두 번이나 승리한 대선 캠프 요직을 거쳐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정치 경력엔 살얼음판을 걷는 조심스러움이 배어 있다. 한데 그가 모리배(謀利輩)에게 농락당했다는 고백은 세인의 귀를 의심케한다. 그는 창원교도소 수감 직전 “외면당한 진실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을 확신한다”고 판결 불복을 선언했다. 그러면서 “대통령님을 부탁드린다. 잘 지켜주십시오”란 ‘임 향한 일편단심’을 전하며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외면당한 진실’ 프레임은 정권의 정통성 시비 차단막이 됐다. ‘콘크리트 지지층’은 응집력을 더했다. 임기 말 국정 지지도가 흔들림 없이 40%를 웃도는 사실이 방증이다. 야성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야당의 공세는 미미하다. 구중심처를 향한 가냘픈 외침은 메아리 없이 맴돌다 사그라든다.

    문재인 정부 탄생 근간은 ‘촛불혁명’이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에 분노해 탄핵을 외쳤던 촛불민심은 권력의 짬짜미를 처단하라는 준엄한 명령이다. 문 대통령이 ‘드루킹’의 활동을 알았는지는 여전한 의문이다. 국민의 눈과 귀가 대통령에 쏠려 있다.

    이상권(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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