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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아라가야 금동관- 김명현(함안의령본부장)

  • 기사입력 : 2021-07-29 20: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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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명현(함안의령본부장)

    아라가야는 함안과 의령, 진주, 창원 바닷가 일대를 주 무대로 활동한 가야 6국 중 하나다. 확인된 유적이나 유물로 미뤄 가야시대 전기와 후기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유력 국가다. 서기 42년부터 561년까지 약 519년 동안 지속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후기 가야연맹 때에는 대가야의 남부 중심세력이 됐다. 아라가야는 대가야가 신라에 굴욕적인 태도를 보이자 가야의 자립발전을 추진했다. 하지만 백제와 신라의 반대로 531년 백제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아라가야는 540년 다시 가야연맹의 중심세력이 돼 신라·백제와 접촉하면서 체제 유지를 요구했으나 실패한다. 백제의 세력 하에 다시 놓인 아라가야는 백제가 신라에 멸망하자 561년 신라에 항복한다. 아라가야는 남강 연안 평야지대의 풍부한 농업생산력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동아시아 해상무역의 허브였던 구야국(금관가야 모체)의 배후에서 가야내륙의 교역을 중계하거나 중국, 일본과 직접 교역했다.

    ▼이달초 아라가야 최고지배자의 묘역으로 알려진 말이산고분군 45호분에서 국내 최초로 봉황장식 금동관이 확인됐다. 45호분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금동투조장식을 보존처리 및 복원하면서 그 형태가 드러났다. 금동관은 횡으로 긴 관테(대륜) 위에 봉황 두 마리가 마주보는 형태의 세움장식이 올려져 있다. 관테는 이마의 윤곽에 맞추어 만든 듯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1매의 동판에 관테와 세움장식은 일체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금동관은 우리나라 삼국시대 금속공예품 가운데 처음 보는 형태고 현재까지 보고된 가야의 관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아라가야 공방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아라가야 금속공예 수준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금동관은 아라가야의 국력과 위상을 증명한다. 금동관의 주인이 밝혀지면 아라가야 고분군의 성격도 달라진다. 왕릉으로 확인될 경우 그 가치는 훨씬 높아진다. 후속 연구 성과가 기대된다.

    김명현(함안의령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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