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19일 (금)
전체메뉴

[작가칼럼] 골목은 도마뱀의 꼬리- 손음(시인)

  • 기사입력 : 2021-07-15 20:22:51
  •   

  • “이렇게 무거운 꽃은 처음입니다.” 내가 쓴 졸시 〈 사과 한 상자〉에서 택배 기사가 들고 오는 사과 상자를 ‘무거운 꽃’에 비유한 적이 있다.

    골목 이사를 결정했을 때 무거운 물건을 들고 나는 데 대한 것보다는 의외로 걱정은 소박한 데 있었다. 치킨은 어쩌지? 쓰레기는 어디로? 그러나 치킨 배달은 ‘지옥까지 배달 가능’하다는 말 그대로 골목앱이란 게 생겨나면서 각종 배달 또한 문제될 것이 없었다. 심지어 소요되는 날짜와 시간까지 알려주어 기다리는 지루함도 없이 현관 앞에 척! 도착해있곤 했다. 각종 쓰레기 문제의 경우 저녁 8시 이후가 되면 집 앞 수거를 해갔다. 이만하면 양질의 청소행정 서비스가 아닌가. 골목에 사는 서민으로서 사회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안정감이 들었다.

    내가 사는 골목은 멋진 카페와 감성적인 소품샵이 있는, 낭만적으로 재해석된 골목이 아니다. 콘크리트 바닥에는 묵직한 구두 발자국과 고양이 발자국이 화석처럼 굳어져 있고, 전봇대와 빌라들이 있고 옥상의 빨래는 아낌없이 펄럭이고 있다. 낮은 지붕의 주택에서는 작다란 부엌 창으로 음식 냄새가 흘러나온다. 가끔 TV 소리와 뒤섞여 싸우는 소리가 뛰쳐나오기도 하지만 ‘뭐, 사는 일이 다 그렇지’ 한다.

    옆집에는 분홍 찔레 같은 부부가 산다. 살림과 육아를 지혜롭게 번갈아 분담하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여자아이와 세 살박이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다. 내 집은 주변의 집에 비해 조금 예쁘다. 나는 어쩐지 그것이 조금 미안해서 꽃이 있는 마당을 개방하였다. 휴일이면 어린아이들이 내 집 마당에 앉아 작은 새처럼 제제 거리며 논다. 그 모양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이는 우리 집 고양이 ‘도로시’다.

    인간은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하려는 본능이 있다. 한 평이든 두 평이든 자신의 정서에 맞는 공간을 마련한 후에야 꿈을 꾸고 취직을 하려 한다. 그 많은 공간 중 나는 왜 골목인가. 그것은 누추하고 낡은 것을 아름답게 보는 나의 빈티지적 취향 때문이다.

    청춘의 시절 나는 부지런히 골목을 찾아다녔다. 버려진 신발, 고인 흙탕물, 가로등, 고무대야, 맨드라미, 비눗물 냄새가 흘러나오는 작은 집의 수돗가 따위에 태생적으로 연결된 무엇이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청춘의 성장도 그곳에서 나왔으리라.

    골목은 여전히 아름답다. 골목의 인문학적 가치를 연구하는 모임도 생겨나고 멋진 문화공간으로도 변신하고 있다. 우리는 골목을 권하고 골목을 나누어야 한다. 일부러 골목을 만들기도 어렵지 않은가. 골목은 과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사람살이’의 시작이 모여든 곳이다. 온갖 목소리와 느슨함을 이해하고 배우는 과정이 있는 곳이며 그 히스토리 속에 들어 있는 위안이 무엇인지 슬픔이 무엇인지 우리는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인정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아침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골목의 사람들은 인사를 나누고 간밤의 쓰레기를 단정하게 정리할 줄 안다. 골목은 조금씩 낡아가고 있지만 뭐 어떠랴. 지금은 빈티지가 대세인 걸. 그러니 섣부른 벽화 따위는 거부한다. 그대로의 흰 벽이 수수하고 좋다. 혹시나 조악한 벽화를 만들어 관광객이 몰리는 골목이 될까 봐 걱정스럽다. 소박하고 맑은 것에 기대 살고 싶다.

    해가 뜬다. 골목의 도마뱀은 꼬리를 남기고 어디로 갔나.

    손음(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