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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어린이집 페이백 근절, 전국 지자체도 동참해야- 이현근(창원자치부 부장)

  • 기사입력 : 2021-06-29 20: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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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내 한 어린이집에 종일반 교사로 계약하고 일을 했던 한 교사는 첫 월급이 나오기 직전 원장으로부터 어린이집 사정이 어려우니 근무시간을 단축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코로나19 등 사정을 감안해 동의했는데 월급은 종일반 계약대로 입금이 되었고, 원장은 일한 시간보다 많이 입금되었으니 170여만원의 월급 중 40만원을 되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일명 돈을 줬다가 되돌려 받는 ‘임금 빼앗기’인 페이백(pay back)이었던 것이다.

    어린이집 페이백은 원장들이 교사에게 서류상으로는 정상적으로 임금을 지급한 것으로 했지만 급여의 일부나 혹은 전부를 현금으로 인출해 원장에게 직접 갖다 주거나 지정한 다른 사람의 계좌로 송금하는 방식으로 상당수 민간어린이집에서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는 일이다. 상황이 심각하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는 지난 2020년 4월 1280명 보육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어린이집 페이백 온라인 실태조사’를 했다. 조사결과, 응답자의 38.3%(389명)이 직접 페이백을 경험했거나 직접 당하지는 않았지만 동료교사가 권유를 받는 것을 목격했다고 했다. 노조는 2018년 12월 기준 전국 민간·가정어린이집 보육교사가 21만5000여명인 것을 고려하면 연간 약 1846억원이 페이백 됐을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전국 어린이집에서 암암리에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지만 이런 사실이 외부로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을’의 신분인 보육교사들이 페이백 신고를 했을 경우 당할 불이익 때문이다. 신고 교사는 해당 어린이집에서 해고는 물론 ‘갑’인 어린이집 원장들 사이에 블랙리스트로 분류돼 다른 어린이집 취업도 어렵다. 사실상 신고 한번 했다가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을 쥔 원장들에게 찍혀 어린이집에서는 영원히 퇴출될 수도 있기 때문에 부당하고 억울하더라고 신고조차 하지 못하고 돈을 빼앗겨왔다.

    보육교사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신고를 하더라도 어린이집 자체 수입금으로 페이백을 했을 경우는 임금체불로 처리되고, 원장이 도중에 돈을 돌려줄 경우 사건이 종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린이집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불법성을 인지했지만 적극적으로 적발하거나 제도를 개선하지 못하면서 오롯이 보육교사들만 피해를 감당해왔다.

    이런 가운데 보육교사들에게 희소식이 들려왔다. 창원시가 최근 전국에서 처음으로 보육현장의 페이백 근절을 위해 칼을 빼들었기 때문이다. 시는 먼저 창원 관내 전 보육교직원들에게 페이백 근절을 위한 청렴이행서약서를 제출받고, 이를 이행하지 않는 어린이집에 대해서는 정부나 시에서 제공하는 각종 사업에서 배제하거나 후순위로 돌리기로 했다. 무엇보다 신고할 경우 재취업에 두려움을 느끼는 보육교사들을 위해 공익제보를 할 경우 가산점 등을 통해 국공립어린이집에 채용될 수 있도록 했다.

    정부에서도 나섰다. 30일부터 어린이집 회계에 속하는 재산을 보육 목적 외로 부정하게 사용할 경우 어린이집 운영정지나 폐쇄, 원장 자격정지를 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 영유아보육법이 시행에 들어가 페이백을 근절할 수 있는 제도적인 여건도 하나둘 만들어지고 있다.

    어린이집 페이백 문제는 전국적인 사안이다. 창원시를 필두로 전국 지자체에서도 페이백 근절에 동참해야 한다. 열심히 일한 대가를 빼앗아가는 치졸한 일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현근(창원자치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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