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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886) 오월배망(五月倍忙)

- 음력 5월 달은 두 배로 바쁘다

  • 기사입력 : 2021-06-29 08: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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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방한학연구소장

    농사에서 바쁘지 않은 달이 거의 없지만, 음력 5월은 농가에서 가장 바쁜 달이었다. 음력 5월은 양력으로 6월에 해당되는데, 농사일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모심기와 보리타작이 같은 시기에 겹쳐 있어 다른 달보다 두 배 이상 바쁘다. 그래서 옛날 속담에 “오뉴월에는 죽은 송장도 거든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손이 부족하다.

    거기다가 고초 모종, 담배 모종, 고구마 심기, 누에 말리기 등등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대부분의 농사일이 다 힘들지만, 그 가운데서도 모심기만큼 힘든 일도 드물 것이다. 펄펄 끓는 논바닥에 발을 담그고서 하루 종일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며 손가락 끝으로 모를 꽂아 심는다. 2초에 한번 허리를 굽힌다면 10시간 일하면 1만 8000번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해야 한다. 거기다가 등 위에서는 찌지는 듯한 햇살이 내리쪼인다.

    보리나 밀을 베어 수확하는 일도 모심기 못지않게 힘든 일이다. 메마른 밭에서 보리를 베면, 찌는 듯한 더위에 숨이 턱턱 막힌다. 집으로 져다 날라 마당에 펼쳐 놓고 도리깨로 타작을 하면, 사람은 땀범벅이 된다.

    그 외 고추 모종, 담배 모종, 고구마 등을 심으려면 비온 뒤 땅이 젖은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 그래서 농사일은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도 신경이 많이 쓰인다.

    당(唐)나라 중기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관예맥(觀刈麥)’에서 바쁜 농촌생활을 잘 묘사하였다.

    “농가에는 한가한 달이 적나니, 오월이 되니 사람이 두 배로 바쁘구나. 밤에 남풍 불어와 밀이 언덕을 덮어 누렇구나.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소쿠리 밥을 지고, 애들은 마실 것을 들고 가네. 서로 따라서 들판에 음식 먹이러 가는데, 어른들은 남쪽 언덕에 있도다. 발은 더운 흙 기운에 삶기고, 등은 더운 하늘의 빛에 지져지네. 힘이 다하여 더운 줄도 모르고, 단지 여름날이 긴 것만 아끼네.(田家少閑月, 五月人倍忙. 夜來南風起, 小麥覆籠黃. 婦姑荷簞食,童稚携壺漿. 相隨餉田去, 丁壯在南岡. 足蒸暑土氣, 背灼炎天光. 力盡不知熱, 但惜夏日長.)”

    밀 수확하는 농촌의 모습을 잘 묘사했다. 부녀자들은 일꾼들 음식 가져다 나르느라 바쁘고, 애들은 물주전자 술주전자 들고 따라가느라 바쁘다. 지금 60세를 넘긴 농촌 출신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어릴 때 겪었던 일이다.

    그런데 20~30년 사이에 농촌이 기계화가 되어, 지금은 모심기 보리타작 풍경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모는 모두 이앙기로 심고, 보리도 콤바인으로 수확한다. 필자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책에서만 보던 광경이다.

    농사일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기계화 자동화가 되어 생활이 아주 편리하고 수월해졌다. 그러나 사람들은 생활이 더 즐겁거나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우울증 환자나 불평불만을 가진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젊은이들은 ‘헬조선’이라는 말로 앞 세대를 원망하고 있다. 지금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있다 해도, 더 어려웠던 옛날을 생각하여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면서 자신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 五 : 다섯 오 * 月 : 달 월.

    * 倍 : 두 배 배. * 忙 : 바쁠 망.

    허권수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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