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18일 (목)
전체메뉴

[경남시론] 국민의 절반은 비수도권에 산다- 이영(창원시정연구원 연구위원)

  • 기사입력 : 2021-06-08 20:04:52
  •   

  • 마치 전투가 벌어진 양상이다. 두 편으로 나뉘어 경쟁하는 것은 아니니 전투보다는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기도 하다. 벌써 30여곳이 참전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건희 미술관’ 유치 전쟁터에 말이다. 이 전쟁에서의 최고 승자는 공공기관 유치전이 있을 때마다 매번 그래 왔듯이 예산과 권한이라는 칼자루를 거머쥐고 있는 중앙정부가 될 것 같다.

    유치전에 뛰어든 지역들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복잡한 셈법 속에서 ‘이번엔 정부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중앙정부의 시혜를 마음 조리며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희망 고문이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3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지방은 예산과 권한을 가지고 있는 중앙정부에게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중앙정부는 서울수도권 일극 체제라는 국가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공공기관 지방 이전 등 많은 분산·분권정책을 펼쳐 왔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정책들이 성공했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수도권 공공 기관 2차 지방 이전을 준비하는 지금도 여전히 자원 배분에 있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서울수도권에 인적·물적 자원들이 끊임없이 몰리고 있다.

    지난달 문체부 장관이 “많은 국민이 쉽게 관람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확보하는 게 ‘정부의 도리’”라며 ‘이건희 미술관’의 수도권 건립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물론, 수도권에는 전체 국민의 절반이 살고 있고, 교통 인프라가 좋아 접근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문화시설의 약 37%가 이미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고, 문화활동 역시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다. 효율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부의 도리’는 효율성만 중시해서는 안 된다.

    공공 자원의 정의로운 재분배를 위해서는 형평성도 항상 고려되어야 한다. 효율을 따졌다면 애초부터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한 분산·분권정책은 추진하지 말았어야 한다. 이미 정부도 중앙정부 주도 방식의 국가 균형 발전이 저 성장, 양극화, 저출산, 지방 소멸 등 당면한 국가적 과제 해결에 한계가 있음을 느끼고, ‘지역 주도의 분권형 균형 발전’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추진하고 있다. 문화 분권 또한 마찬가지다.

    일각에서는 이번 ‘이건희 미술관’ 유치가 문화 분권을 볼모로 한 지방 정부의 홍보 수단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다. 이러한 ‘수도권 중심적인 인식’으로 인해 비수도권에 살고 있는 절반의 국민들은 문화 예술을 향유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창원시는 과거 중앙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만들어진 마산해양신도시에 건립 부지를 확보하고, 첨단 기술과 자연이 접목된 세계 최고 수준의 국립현대미술관을 유치하고자 3년 전부터 ‘처절하게’ 노력하여 왔다. 그 결과 한국 문화 예술계를 이끄는 양대 산맥인 한국예총과 한국민예총의 적극적인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물론, 국립현대미술관이 조성된다고 하여 창원시가 스페인의 빌바오와 같이 세계적인 문화도시가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관 건립을 통해 지역의 문화 예술 수준이 상향 평준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걸어보는 것이다. 누군가는 또 비효율을 지적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 투자적 성격이 강한 사회 지출은 장기적으로 볼 때 형평성의 제고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사례가 프랑스의 문화 대중화 정책이다.

    미테랑 대통령 시절 문화부 장관이었던 자크 랑은 중앙정부의 권력을 지방에 고루 분산시켜 지역별 문화 잠재력을 이끌어내는데 기여하였고, 그 결과 지역 별·도시 별로 특색 있는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지방의 다양성이 문화 강국을 키울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건희 미술관’이든 ‘국립현대미술관’이든 지방에 설립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수도권에도 절반의 우리 국민이 살고 있다.

    이영(창원시정연구원 연구위원)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