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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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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美를 다루는 이들의 아름답지 못한 행실- 김종원(경남도립미술관장)

  • 기사입력 : 2021-05-11 20: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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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소장 미술품 국가기증이 불러온 세간의 관심이 대단하다. 그 규모면에서나 내용의 질적 수준이 미술계의 흥분을 넘어서 문외한에게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되기 충분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소장품 중 국내의 각 지방에 연고가 있는 작품 일부를 연고지의 공립 미술관에 분배해 기증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이 ‘흥미롭다’는 개인적 견해에는 세 가지 함의가 있다. 먼저 그 기증 미술품을 나누어 기증한다는 것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미술품의 분할은 소장인의 고유한 철학과 기억이 흩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흩어짐이 없이 그 소장품 전체가 하나의 미술관으로 탄생되어야 자연인 이건희 회장의 인간적 면모와 사회적 관점, 그리고 심미적 철학적 깊이가 여실히 드러날 것이며, 그 미술품 하나하나에 깃든 그의 진정성이 총합적으로 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지역 연고지에 작품을 배분해 기증한다는 일의 의의를 따져보는 게 우선 필요하다는 점이다. 각 언론에서 지방 미술관의 열악한 소장품 실태를 말하면서 가뭄의 단비가 될 것이며, 지방 미술관의 위상과 지역민의 자긍심이 높아질 것이라는 등등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찬동할 수 없다. 지역 미술관은 지역민들이 정성을 다해 미술품을 기증하고, 이를 통해 미술관의 품격을 쌓아가야 자긍심과 애정이 더욱 깊어지는 ‘진정한 기증의 의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연고가 있는 지방 공립 미술관에 관련 작품을 기증한다’는 원칙에 어긋난 사례가 있어, 기증 방식에 있어 골자가 되는 논점이 이미 흐려졌다는 점이다. 즉, 지역 연고와 관계없이 기증된 작품이 있다는 말이다. 바로 대구미술관에 기증된 김종영(1915~1982) 선생의 조각 작품이다. 김종영 선생은 창원 출신의 조각가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 대구와 김종영 선생과의 인연이 어떤 경우인지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다. 기증품의 분배 방식과 결정이 이건희 회장 당신의 뜻이나 유족 측의 뜻을 왜곡한 미술계 인사가 관여한 결과라고 예측되는 부분이다.

    물론 유족 측이 담당 주체를 위촉 할 수도 있고, 기증 절차에 관여한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등에서 그 일을 맡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결정 주체가 어디이며, 누구였든지 간에 김종영 선생이 창원 출신의 조각가라는 점을 몰랐을 리 없다. 지역 연고에 따른 기증이라는 발표가 여실히 어긋나는 부분이다. 기증자가 이를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작품을 기증 받은 대구미술관 측은 김종영 선생의 연고지가 경남 창원이라는 점을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기증 절차를 집행한 주관자 측에 알려 기증의 의미가 분명하게 실천될 수 있도록 바로잡아주는 것이 도리이다. 그럼에도 대구미술관 측에서 함구하고 ‘우리는 기증 작품 목록 그대로 받았다’고 한다. 기증자의 진의를 더 유심히 살펴서 김종영 선생의 작품이 경남도립미술관으로 기증되도록 하였다면 도리에 맞는 아름다운 일이 될 수 있었는데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또 한 작품이 더 있으니 이중섭(1916~1956)의 ‘황소’다. 이 작품은 이중섭이 6·25전쟁 피란 시절 통영에 머물면서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제주 서귀포의 이중섭미술관에 소장될 예정이다. 이 작품은 1970년대 까지 통영에 있다가 박종한(1925~2012, 진주 대아중고등학교 설립자, 차문화연구가)선생이 구입한 후 얼마 뒤에 삼성으로 건너갔다. 박종한 선생의 아들 박창수 씨는 이 작품의 구입 등 세세한 내력에 대해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연고지를 판단하는 데 있어 어떤 잣대를 들이대야 하는가? 삼성 측에는 분명 작품 구입 내력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를 살피지 않고 그렇게 하였다면 이 또한 기증자의 참 뜻을 왜곡한 모양새다. 이 모든 것이 이래저래 미(美)를 다루는 사람들의 ‘아름답지 못한 행실’이다.

    김종원(경남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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