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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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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인생은 ‘연약지반’- 황원호(황두목의 창동모꽁소 목수)

  • 기사입력 : 2021-05-11 20: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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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서방은 진득하게 하는 일이 없노?” 생전 장모님은 당신 딸에게 걱정 묻은 타박을 했었답니다. 인생 사모작째에다, 거쳤던 직장 수는 곱으로 많으니 그럴 만하다 했죠. 그래도 뭐 어쩌겠습니까. 이리 생겨먹을 걸.

    나로선 진지했습니다. IMF 실직자의 호기심에 걸려든 목수의 꿈은 거의 15년이 흐른 뒤 ‘아무나 갈 수 있는’ 명문 한옥학교 진학으로 실현됐습니다. 못주머니 차고, 체인톱을 든 채 공중에 뜬 들보와 도리를 타며 일하는 멋진 한옥목수의 꿈은 한낱 허세였을 뿐. 허리통증으로 기세가 꺾여버렸죠. 몸이 견딜 만한 가구목수로 방향전환!

    먹고살아야 해서 서둘러 점방 열고, 거의 독학으로 지난 8년여를 버티고 있습니다. 그나마 동기생 열다섯 명 중 불과 네 명 정도가 나무일을 한다는 것을 위안 삼고. 겸손한 척 ‘서툰 목수’를 별명으로, 木手라기보다는 木修(배울, 닦을 수)라고 말합니다. 냉정한 자평이기도 하고.

    오십 넘어 시작한 목수질을 두고 퇴직했거나 퇴직을 앞둔 친구들 사이에 사소한 관심거리가 되기도 했죠. 먹고살 만하냐가 공통질문. “혼자 하면 라면 정도는 먹고, 둘이서 하면 라면 한 개 끓여서 나눠먹어야 한다”고 답합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이 내 인생 오르가즘이다!”고 강조합니다. 오랫동안 하고팠던 일이고, 해보니 적당히 맞습니다. 내 시간도 있고요.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면 되니 스트레스도 적습니다. 코로나19를 건너가는 최적의 방법 ‘혼자놀기’에도 맞습니다.

    자식들에게 뭘 물려줄 생각조차 못하니, 그들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꼰대질 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집안일에 대해서는 ‘자식들에게 결재 올립니다’. 육십년을 살아도 ‘인생의 달인’이 되지 못한 저보다는 현명하게 생각되기 때문이죠. 빈부격차가 회복 불가능 상태인 신자유주의시대, 직업소멸 위기에 처한 AI시대에 그들의 생존역량은 ‘전투력 만렙(최고 레벨)’이잖아요.

    오직 제 걱정만 합니다. 100세 시대니, 120살까지 살게 될 거라니 하니 공포영화보다 더 무섭습니다.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목수질 해보렵니다. 힘 부치면 ‘무식하게 살았지만 유식해지면서 죽을 즐거운 상상’ 가능한 비장의 카드도 준비합니다. 쫄지 맙시다!

    황원호(황두목의 창동모꽁소 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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