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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19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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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최인숙 창원길고양이보호협회 활동가

“캣맘 인식개선 통해 ‘사람-길고양이 공존’ 이뤄내야죠”

  • 기사입력 : 2021-05-05 21: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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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 전 가을. 진해의 한 아파트에서 길고양이 ‘노랑이’와 새끼고양이 다섯 마리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당시 초보 캣맘이었던 최인숙(52·여) 창원길고양이보호협회 활동가는 이들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한 사람이다. 고양이들이 정자 아래서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현장 상황을 볼 때 한 주민의 독극물 독살이 의심돼 경찰에 신고했지만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길고양이에 대한 제도도, 인식도 미진했다. 최인숙 활동가가 본격적으로 길고양이 보호 활동에 나서기로 결심한 순간이다. 길고양이와 사람 간 공존을 위해 창원 캣맘들을 대표해 활동하고 있는 그녀를 만나 창원길고양이보호협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2011년부터 ‘캣맘의 길’로
    지난해 협회 설립 회원 500명
    지역 동물 카페서도 활동

    현명한 캣맘 되기 위해선
    주변 환경 따져가며 대처해야
    주민들 인식도 바꿀 수 있어

    지난 2월부터 매달 한 곳씩
    길고양이 급식소 설치
    시·시의원 만나 의무화 촉구

    암고양이 포획 자궁 적출
    질병 등 파악 후 진행해야
    “길고양이 학대 없는 도시 되길”

    최인숙 창원길고양이보호협회 활동가가 창원대 앞 카페에 설치된 길고양이 급식소에 사료를 주고 있다.
    최인숙 창원길고양이보호협회 활동가가 창원대 앞 카페에 설치된 길고양이 급식소에 사료를 주고 있다.

    ◇딸 외로움 달래고자 캣맘의 길로= 결벽증이 있는 최인숙씨는 동물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2011년 맞벌이 생활로 초등학교 6학년 딸이 홀로 있는 것이 걱정된다는 남편이 고양이 한 마리를 들여온 것이 첫 대면이었다. 고양이 특유의 귀여움에 자연스럽게 길고양이에게도 관심이 생겼고 틈틈이 간식을 나눠주는 캣맘이 됐다. ‘노랑이’는 그가 처음으로 돌봐준 길고양이다.

    최 활동가는 “노랑이와 주변 길고양이를 돌보기 시작하니 캣맘 활동에 반발하는 주민과 갈등이 있었다. 집단 살해사건도 해당 주민이 벌인 것으로 보인다. 사건이 발생 이후 이러한 비극이 또다시 발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경남지역 동물 카페에 가입해 길고양이 보호를 위한 활동에 나섰다. 또, 진해지역 캣맘 10여 명을 중심으로 ‘진해캣맘협의회’를 만들어 길고양이 구조에도 힘썼다. 구조·학대 사건 발생 시 캣맘으로부터 도움을 요청 받을 만큼 인지도도 생겼다.

    길고양이 /창원길고양이보호협회/
    길고양이 /창원길고양이보호협회/
    길고양이 /창원길고양이보호협회/
    길고양이가 먹이를 먹고 있다. /창원길고양이보호협회/

    ◇협회 최우선 과제는 캣맘 인식개선= ‘길고양이 공존을 위해서는 사람들의 인식 개선이 가장 중요하다.’ 10여 년간 길고양이 보호 활동가로 활동하면서 그가 내린 결론이다. 꾸준히 펼쳐오던 구조·입양·임시 보호 활동은 공존을 위한 필수과제인 주민 갈등 해결과는 거리가 멀었다. 주민들 앞에 나서야 했다. 최 활동가는 2020년 2월 뜻을 같이한 캣맘들과 창원길고양이보호협회를 설립했다. 협회는 길고양이와 캣맘들의 사회 인식개선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회원은 어느덧 500여 명을 넘겼다.

    최 활동가는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개선보다도 캣맘 스스로의 인식개선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캣맘 활동을 하면 99%는 주민 민원과 맞부딪치게 된다”며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길고양이가 살해, 학대 등 위협을 받게 된다. 캣맘의 대처방식에 따라 길고양이를 대하는 주민들의 인식도 바뀐다”고 주장했다.

    그는 ‘길고양이가 불쌍해서 밥을 준다’식의 감정적 호소는 경계했다. 길바닥에 사료를 뿌리는 행위, 일회용 용기를 밥그릇으로 사용하는 행위 등도 지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환경을 해치면서까지 길고양이를 돌보는 행위는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현명한 캣맘이 되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을 따져가며 길고양이에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밥을 주는 곳이 길고양이에게 안전한 곳인지, 동네 미관을 헤치지 않는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 주민 민원이 발생하면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이 정당한 행위고, 위생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최인숙 창원길고양이보호협회 활동가.
    최인숙 창원길고양이보호협회 활동가.

    ◇길고양이 학대 목격 시 초동조치 중요= 최 활동가는 길고양이 학대·살해 사건은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대 제보를 받으면 어김없이 10년 전 희생된 노랑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창원은 길고양이 학대·살해사건이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6월 13일 창원 마산합포구 교방동 주택가에서 발생한 새끼고양이 사체 절단 사건부터 지난달 창원 중동 아파트 단지에서 연달아 발생한 학대 사건까지. 최 활동가는 알려지지 않은 학대·살해 사건 또한 수십 건이 있다고 덧붙였다.

    최 활동가와 창원길고양이보호협회는 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가해자 색출과 재발 방지에 집중한다. 그는 길고양이 학대·살해를 목격 시 초동조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우선 경찰에 신고하고 인근에 있는 증거를 모두 확보해야 한다. 경찰과 동행해 인근 CCTV를 확인하고, 의사 소견 또한 받아야 한다.

    그는 “학대·살해사건을 목격했음에도 소극적으로 대처하면 가해자가 또 다른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커진다”며 “길고양이는 야생동물로 분류돼 가해자가 특정되어도 법적 처벌이 어렵다. 그럴수록 학대 사실을 알려 지역민들에게 동물 학대에 대한 경각심을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다. 동물 학대는 같은 생명인 사람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어 반드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창원길고양이보호협회가 한국재료연구소에 설치한 길고양이 급식소.
    창원길고양이보호협회가 한국재료연구소에 설치한 길고양이 급식소.
    창원길고양이보호협회가 소계동 주택에 설치한 길고양이 급식소.
    창원길고양이보호협회가 소계동 주택에 설치한 길고양이 급식소.

    ◇밥그릇보다는 길고양이 급식소= 창원길고양이보호협회는 지난 2월부터 매달 한 곳씩 급식소 설치 사업을 해오고 있다. 현재까지 소계동 주택, 창원대 앞 카페, 한국재료연구원 등 3곳에 설치했다.

    길고양이 급식소는 공존을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시설이라는 게 최 활동가의 설명이다. 그는 “밥그릇 10개보다 잘 관리된 급식소 1개가 더 효과 있다”며 “위생 부분에 대한 민원 해결과 함께 길고양이 파악 등 공존을 위한 관리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특히 길고양이 급식소는 개체 수 조절을 위한 중성화 수술 과정인 TNR(Trap-Neuter-Return)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협회는 지속해서 창원시 관계자, 시의원과 간담회를 열고 급식소 의무화를 촉구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논의 끝에 창원시가 민원 없이 운영되고 있는 길고양이 급식소를 대상으로 ‘길고양이 공존 안내문’을 부착하기로 했다. 또, 시가 진행하는 TNR 과정도 체계적으로 변화하도록 힘쓰고 있다.

    그는 캣맘들에게 TNR이 꼭 정답은 아니라는 말을 전했다. 길고양이 환경을 알고 상황에 따라 조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암고양이 같은 경우 포획해 자궁을 적출하고 3일 후 방사하는데 100%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죽음의 길로 내모는 것이다. 캣맘들은 동네 길고양이들이 몇 마리 있고, 질병·부상 여부 등을 파악한 후 TNR을 진행해야 한다. 개체수 유지를 위해서는 동네 길고양이의 절반 이상을 대상으로 2~3년간 꾸준히 TNR을 실시하는 것이다.”

    최 활동가는 “창원시와 경남도는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아직 동물복지 낙후지역이라며 동물복지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서울시, 천안시 등은 조례를 통해 공원 내부 길고양이 급식소 설치가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반면, 창원시 조례에는 관련 내용이 없다. 1000만 반려동물 시대에 길고양이를 배척할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공존은 필연이다. 앞으로 길고양이 학대 없는 창원시가 만들어지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용락 기자 roc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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