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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낯선 서예의 시대- 윤영미(서예가)

  • 기사입력 : 2021-04-05 20: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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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강하고 있는 대학이 미술교육과라 조금은 다를 것이라고 여겼다. 이 위기감을 서예인들이 어느 정도 느끼고 있을지를 자주 되묻곤 한다. 첫 출강 때, 초중고 시절 붓을 잡아본 친구가 있는지 확인하니 서너 명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조금씩 줄더니 이번 학기에는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2000년대에 태어난 그들에게 서예란 어떤 예술인가. 붓을 잡고 글씨를 써 내려가니 학생들은 탄성을 질렀다. TV 사극에서 보았다며 신기하다고 했다. 인스타 소재라며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다. 교육하지 않는 학교의 문제일지, 앞서 그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서예가의 문제일지 생각이 많아졌다. 이젠 그들 앞에서 서예가(書藝家)는 현 시대 사람이 아니었다.

    한자가 낯설었다. 서예의 도구인 문자가 대부분 한자라 젊은 세대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한자를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한자어가 대부분이지만 그보다 이젠 외래어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태어날 때부터 아이들 손에 우리 어른들은 핸드폰을 쥐어주었고, ‘뽀로로’가 아이들을 키웠다고 할 지경이다. 이러한 세대에게 서예를 가르치고 있다. 법첩(法帖)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고, 그것을 보며 글씨를 잘도 따라 쓴다. 법첩을 확대하거나 선생에게 받은 체본(體本)으로 획의 각도와 굵기까지 그대로 따라 쓰며 반복했던 우리 세대와는 다르다. 역시 종이보다는 화면이 더 편한 세대이다. 서예술(書藝術)을 함께 공유해야 하고 다음 세대까지도 자연스럽게 넘어가야 한다는 초조함을 2000년대 생들을 바라보면서 느끼게 된다.

    그들에게는 서예의 세로 쓰기 또한 불편하고 낯선 이유다. 교과서나 성경책 조차도 가로 쓰기로 모두 바뀌었는데, 서예는 여전히 독립선언문 쓰던 그 시절처럼 오른쪽에서 시작하는 세로 쓰기 중이다. 서예가가 세로 쓰기를 고집하는 사이 판화가 이철수 작가나 신영복 선생은 한글 가로 쓰기 문자 예술로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집집마다 그들의 작품이 복사본조차도 걸려 있고, 사람들은 마음에 위로와 교훈을 새긴다. 서예가로서 참 부끄러운 일이다.

    서예가들은 서예 전문 잡지나 그들만의 공간에서 이러한 세태를 힘들어한다. 대중들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추구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대중들이 서예의 귀함을 몰라준다고 푸념하며 그래서 가난하다고 서러워한다. 왜 서예가들은 서예가들을 향해서만 목소리를 높이는가. 이젠 대중을 향해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소수 그들만의 수련이나 놀이가 아니라 대중에게 눈높이를 맞추어 그들에게 작품 한 점 팔아내야 한다. 목이 쉬라 외쳐 대는 예술성은 함께 공감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소리 없는 아우성뿐이다.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세련된 붓으로 심장을 찌르는 전율을 대중에게로 던져야 한다. 서예가 점점 낯설어지고 있어서 그런지 붓을 들고 나가면 나는 희소성의 가치에 매우 부합된 사람이 되어 그들에게 열광을 받는다. 참 ‘웃고픈’ 현실이다.

    낯선 서예가 한글 서예로 활발해졌다. 캘리그라피로 손 글씨가 대중화되었지만 이는 실용 글씨 쪽으로 치우친다. 예술성까지 부여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감이 없진 않다. 서예가의 평생을 갈고닦은 필력과 미적 감동이 이러한 고민 앞에서 대중 속으로 들어간다면 화려했던 과거로의 회귀도 낯설지 않을 것이다. 아파트 벽면에 고급 타일 한 조각보다도 서예 작품 한 점이 사람들에게 낯익는 풍경이 될 것이다.

    펜글씨조차도 드물어진 세상에 붓의 단절은 서예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위기이다. 서양의 클래식과 미술사에 뒤지지 않는 서예사(書藝史) 또한 오랜 역사 속에서 찬란한 문화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지 못한다면 어찌 이를 예술이라 하겠는가.

    윤영미(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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