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경남에도 사람이 산다 (5) 시즌Ⅰ목소리 ③ 창원여성살림공동체

여성 혼자선 묻힐 일들 ‘함께 뭉쳐’ 길을 만들었다
성주류화 정책 모니터링·대안 적극 제시
일선 지자체와 거버넌스 협업체제 구축

  • 기사입력 : 2021-04-04 21:25:20
  •   
  • 지난달 24일 스토킹 처벌법이 통과됐다. 끈질긴 괴롭힘에도 최대 1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그쳤던 경범죄에서 5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범죄로 규정된 것이다. 1999년 첫 발의 이후 22년만이다. 계류하던 법안의 통과를 촉발시킨 것은 지난해 5월 창원 식당 업주 살해사건이다. 40대 남성이 자주 가던 식당 주인을 수년간 문자, 전화로 괴롭힌 데 이어 살해한 사건으로 이 사건에 많은 이들이 분노했지만 경남의 여성들은 이 상황을 슬퍼하고 분노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스토킹 처벌법 제정 촉구 집회 개최는 물론 1인 시위, 재판 방청, 유족 지원까지 적극적으로 나서 법제정을 이끌어냈다. 가해자는 법 통과 하루 뒤인 25일 징역 20년형이 확정됐다.

    혼자서는 묻힐 일들, 피해자임에도 참아왔던 일들을 공론화, 법제화시키고 성주류 정책의 큰 방향과 세부적인 내용까지 다듬어가면서 성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들이 일어나고 있다. 성평등 지수 하위권을 맴돌던 경남에서 이런 일들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창원여성살림공동체와 같은 여성운동단체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이 같은 단체들이 힘을 합한 경남여성단체연합, 여기에 경남의 2030세대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가능해졌다.

    지난해 2월 27일 여성의 당 경남도당 창당대회 모습. 앞줄 왼쪽 두 번째가 초대 경남도당 위원장에 선임된 이경옥 창원여성살림공동체 대표.
    지난해 2월 27일 여성의 당 경남도당 창당대회 모습. 앞줄 왼쪽 두 번째가 초대 경남도당 위원장에 선임된 이경옥 창원여성살림공동체 대표.

    ◇‘사전 지원’으로서의 성평등 운동= “지금까지 여성단체들이 성폭력 피해자, 미혼모 등 피해당사자를 위한 ‘사후 지원’을 했었다면 정책을 바꾸거나 교육을 통해 성평등을 지향하는 ‘사전 지원’에 초점을 두기로 했죠.”

    창원여성살림공동체는 지난 2009년 여성운동단체인 ‘경남여성회’가 진행하던 사업 중 방과후교사 파견사업이 분리되면서 만들어진 단체다. 2011년 즈음부터 단체의 활동 방향을 고민하다 성평등한 지역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성주류화 정책을 제안하고 감시하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2011년 창원시가 처음으로 여성친화도시로 선정되고, 2012년 3월 성별영향평가법이 시행된 때였기에 기초지자체에서의 법 시행을 위한 컨설턴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여성운동을 하며 피해 당사자 여성들, 소수자들의 경험을 헤아리면서 성인지 감수성을 높였고, 성평등 의식을 자연스럽게 키워온 활동가들이 컨설턴트에 적합했다. 그때부터 성평등 정책을 모니터링하는 ‘성주류화 정책 전문가 교육’과 ‘성평등 교육 강사 양성’을 10년째 해오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 여성운동 단체들이 성폭력상담소나 지역아동센터, 미혼모지원 등 피해당사자들을 돕는 센터를 끼고 있는 것과 달리 사무국 하나만으로 지속돼온 특이한 형태다.

    여성단체 회원들과 허성무 시장 등이 ‘여성친화도시 창원’을 자축하는 퍼포먼스를 갖고 있다.
    여성단체 회원들과 허성무 시장 등이 ‘여성친화도시 창원’을 자축하는 퍼포먼스를 갖고 있다.

    창원여성살림공동체 부설 성평등연구소 어울림 신미란 소장은 “지자체가 성별영향평가를 실시하는 것은 의무지만 전국에서도 창원시와 같이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하는 곳은 없다”며 “평가 자체보다는 개선을 위한 검토와 피드백이 필요하다고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기에 가능했고, 성평등 담당관의 잦은 교체, 성평등 교육 인원까지 크고 작은 부분들에 변화의 필요성을 주장해오고 받아들여진 덕분이다”고 말했다. 이후 양성평등기금을 되레 성 역할을 고착화시키는 사업에 주기도 했던 관행에서 벗어나 관련 사업비도 점차 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지난 2월 24일 창원시와 ‘젠더 거버넌스 파트너 협약’도 맺었다. 창원시 정책에 민간기관의 일원으로 시민들과 함께 참여해 성평등한 성주류화 정책을 만들어가게 된다.

    ◇경남여성운동 새 역사 쓴 ‘창당’= “경남에서만 1000명 이상의 유효당원이 있어야 창당이 가능했는데 당원 지원 메일이 하룻밤 사이에 수백 통이 쌓여서 깜짝 놀랐죠.”

    지난해 2월 여성의당이 창당했고, 3월 여성의당 경남도당이 설립됐다. 경남은 여성의당 지역도당이 있는 전국 5곳(서울, 경기, 인천, 부산, 경남) 중 하나다. 창원여성살림공동체 이경옥 대표가 여성의 당 경남도당 위원장을 맡았다. 오랫동안 여성계에서 고민했던 정치세력화가 정당의 형태로 구현되는 것도 의미 있었지만 수도권, 광역시가 아닌 곳에서 도당을 꾸렸다는 것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원내 진입은 못했지만 정당을 설립함으로써 여성 국회의원들과 힘을 합하거나 국회서 정당으로서의 직접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등 여성 의제의 공론화가 용이해졌다.

    특히 경남에서는 기존 진보여성운동단체들과 온라인 중심으로 운동을 꾸려가던 경상도비혼여성공동체WITH와 같은 2030중심 경남 여성 운동가들이 결집하는 계기가 됐다. 현장과 이론, 경험이 축적돼 있으나 현 시대에 폭발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온라인 홍보 등이 취약했던 기존 지역 여성단체들과 경험은 상대적으로 적으나 온라인상 결속력이 강한 젊은 지역여성단체들이 만나 시너지가 생긴 것이다.

    창원여성살림공동체 이경옥 대표는 “지난날 여성정치인이 되려면 여야 공천을 받아야 했고, 정당과 후보에 여성정책 수립 협약, 지지선언과 같은 노력에도 여성이 주변인으로 머무른다는 성격이 강했지만, 2020년은 여성을 의제로 ‘새 판’을 짠 한 해였다”며 “지역에서도 2030세대들이 이런 움직임에 굶주려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고,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며 우리들이 전국과 지역 여성운동에 역사를 썼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법제화를 일구다= 창당으로 기존 지역진보여성단체들과 2030 여성운동가들이 하나로 결집한 힘은 사회를 바꾸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n번방 사건, 김해 교사 불법촬영사건 등 지역사회에 잇따른 여성 혐오와 폭력, 범죄를 규탄하고 대책 마련을 위한 집단행동에 나섰다.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다각적 지원과 기자회견, 온라인 홍보 등을 진행하면서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신·구 여성운동가들이 만났다. 그러면서 서로의 운동 방법과 성향을 이해, 공감, 배려하며 정보를 나누게 됐다.

    특히 창원 식당 주인 살인사건으로 촉발된 스토킹 처벌법 제정 과정에 힘을 모으면서 현장 목소리, 정당 차원 대응 등을 통해 이들로 하여금 사회에 직접적 변화를 갖고 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서로 학습하기도 했다. 마침내 스토킹 처벌법의 법제화를 이루면서 유족들도 이 법이 있었다면 어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이라며, 향후 사건을 막을 수 있는 조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로가 된다고도 언급했다.

    경상도비혼공동체WITH와 여성의당 경남도당이 스토킹처벌법 제정 촉구운동을 벌이고 있다./경남신문DB/
    경상도비혼공동체WITH와 여성의당 경남도당이 스토킹처벌법 제정 촉구운동을 벌이고 있다./경남신문DB/

    스토킹 처벌법 제정 촉구 시위와 창원지법서 열린 n번방 가해자 공판 방청연대에 참가했던 이혜경(27·경상도 비혼공동체 WITH)씨는 “드디어 법이 제정돼서 기쁘기도 했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법이 만들어지나 하는 양가적 감정이 들었다”며 “그래도 내가 직접 행동하니 바뀐다는 사실을 알았고, 여럿의 힘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에 당도 후원하고, 지역 여성의 목소리가 있음을 알리는 활동을 앞으로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지속가능한 활동으로= 창원여성살림공동체는 비영리민간단체로 모두가 자원활동가로 일한다. 활동가들은 개인 개별 강사수입 등으로 생계를 지속하고, 활동한 부분에 대해서 보상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되레 활동가들의 운동성이 살아있다는 측면도 있지만 지속가능한 여성운동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차비와, 식비, 활동비 지급이 있어야 하기에 내부적으로 재정 확보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이경옥 대표는 “운영을 위한 도비나 시비 등 보조금을 받지 않고 있어 자원활동에만 기대고 있는데, 활동 영역을 확장하는 측면에서도 재정이 있어야 한다”며 “올해 내로 사단법인으로 조직을 변경할 계획도 있다”고 밝혔다.


    창원여성살림공동체 2020 현장활동

    ◇총 22회 모니터링(2020년 4월22~12월23일)

    -진주여혐방화살인사건 안OO : 3회, -창원여성스토킹살인사건 하OO : 6회, -김해 교사 불법촬영 윤OO : 4회, -창녕 교사 불법촬영 : 1회, -텔레그램 성착취 김OO : 5회, 정OO : 3회

    ◇탄원서 제출

    - 텔레그램 성착취 정OO : 2심 항소기각 엄중 처벌 탄원서 401명 제출, - 창원여성스토킹살해사건 하OO : 1심, 2심 탄원서 2,300여 명 제출,

    - 김해 남교사 불법촬영 엄중 처벌 탄원서 제출(단체명으로 제출), -진주여성혐오방화살인사건 안OO : 2심 엄중처벌 탄원서 제출

    ◇1인 시위, 집회, 기자회견

    -진주여혐방화살인사건 : 1인 시위(5/12, 13), 도청 시청 경남교육청, -스토킹범죄 처벌범 제정 활동 : 창원 페미사이드(여성살해사건) 집회(5/10), 정우상가, -1인 시위 : 6/2~5(창원지법, 창원지방경찰청), -국회 기자회견 6/4, -집회 : 6/6 정우상가, -기자회견 : 8/19 도의회, -1인 시위와 간담회 : 국회 법사위 윤한홍의원실 앞 1인 시위, 의원실 간담회(12/4)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 관련기사
  • 이슬기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