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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5월 0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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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할머니 약- 이영자

  • 기사입력 : 2021-04-01 08: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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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머니 콩콩 메주 찧다가

    절반도 못 했는데 허리가 아파서

    그대로 펼쳐 놓고 병원 간 사이

    검은 고양이 들러서

    할머니 내 간식 차려놓고 어디 가셨나

    조금만 먹겠다고 하다가

    고소한 맛 때문에 반이나 먹었는데


    이넘아 이넘아

    장독에는 니가 들어앉을래 도망치는 그넘

    고양이 쫓다가 약방에서 주는 약

    먹지도 않았는데

    할머니 허리는 나아버렸다

    고양이 때문에



    ☞ 동화책 속의 한 장면처럼 선명하고 재미있다. 메주를 콩콩 찧다가 병원에 가는 할머니. 그 틈을 노려 검은 고양이가 냉큼 달려와 찧다 만 메주를 먹는다. 할머니가 집에 돌아와 고양이를 보고는 “장독에는 니가 들어앉을래?”하며 호통을 치고, 그 바람에 아픈 허리가 쭈욱 펴진다. 고양이는 도망가면서 할머니를 돌아보고 씨익 웃을 것이다. 시를 읽는 독자들의 입에도 슬그머니 웃음이 걸리게 된다.

    세상 만물 중에서 요 고양이만큼 사람에게 아양 떨면서 사람을 잘 이용하는 동물도 없을 것이다. 개는 사람을 주인으로 여기지만, 고양이는 사람을 자신의 집사로 여긴다고 하던가. 시골의 길고양이에겐 이집 저집이 제집이나 마찬가지다. 아무 집에나 들어가 떼를 쓰면 할머니는 ‘저놈의 고양이’라고 삿대질을 하면서도 고양이 끼니를 챙겨주곤 한다. 함께 하는 삶 속에서 서로에게 약이 되는 존재이다.

    이영자 시인은 산청에 살면서 시골 할머니들의 이야기와 풀과 나무와 새들의 노래를 시로 적고 있다. 이 계절쯤엔 동네 밭두렁에서 뭔가를 캐다가 고양이와 노닥거리고 있을 것 같은 시인.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는 그의 시는 우리의 우울함을 덜어주는 참 좋은 약이다. 김문주(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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