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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0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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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나눔 프로젝트] (66) 기울어진 집에서 바로 선, 태희의 꿈

공부할 공간 하나 없지만… 환자 진심으로 대하는 의사 되고파
기초수급비 받아 대부분 빚 갚는데 써
엄마와 아들 한 달 생활비 5만원 남짓

  • 기사입력 : 2021-03-03 08: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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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들이 배고프다는 그 소리가, 방구석에 쪼그린 채 30시간 맞는 것보다 훨씬 아픈 거더라고요, 죽으려고도 했는데 겨우 정신차려 삽니다.”

    5만원. 누군가에게는 한 끼 식사값도 안 되는 돈이지만 창원에 사는 태희네 가족에게는 한 달 생활비다. 태희 엄마 정현(41·가명)씨에게 기초수급비가 96만원 들어오면 80만원 이상이 빚을 갚는 데 쓰인다. 지금 고3인 태희(18·가명)가 생후 6개월 때 이혼한 전 남편의 빚을 겨우 꼬박꼬박 갚아나가면서 대출이 허용됐을 때인 4~5년 전, 분식집을 함께 해보자는 친구에 사기를 당해 빚이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세상이 미워 떠나고 싶었지만 뱃속에서 큰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살아남아 정현씨 곁에 있는 태희를 보고 살기로 결심했다. 오래전 시아버지와 남편의 잦은 폭행으로 관절이 좋지 않아 식당일도 민폐만 끼치기 일쑤. 간간이 집에서 하는 부업을 하거나 새벽에 병을 주우러 나선다. 그마저도 코로나 이후 경쟁이 치열해져 몇일에 한 병 주울까 말까 한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지원해주는 반찬으로 겨우 식사를 때운다. 많이 먹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일까, 정현씨는 거식증을 앓아 최근에도 10㎏이 빠졌다. 태희는 먹을 수 있을 때 먹는 습관에 폭식증이 와 몸이 불었다.

    지난달 23일 창원에 있는 정현(41)씨, 태희(18)군 집에서 의창구 사회복지담당자들과 경남은행 관계자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지난달 23일 창원에 있는 정현(41)씨, 태희(18)군 집에서 의창구 사회복지담당자들과 경남은행 관계자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175㎝, 90㎏가 넘는 고3 남학생이 누우면 가구에 발끝이 닿을락말락한 좁은 방에는 정리되지 않는 짐들이 뒤엉켜있다. 7년 전부터 바닥이 패이기 시작해 냉장고가 쓰러지기도 한 집은 모든 가구 밑에 책을 끼워 간신히 균형을 맞춘다. 기울어진 이 방에서 태희는 먹고, 자고 공부한다. 좁은 방에 몸을 구겨넣어 잘못된 자세로 앉고, 잠을 자면서 거북목이 심하다. 목 뒤에는 동전만한 혹이 잡힌다.

    나빠진 몸상태 만큼이나 어릴 때부터 태희의 마음도 푹푹 패였다. 초등학교 때 ‘아비 없는 아이’라며 심한 놀림과 폭력을 당해도 꾹 참았던 태희는 소아우울을 앓았다. 몸과 마음이 기울기 쉬운 환경에서 태희의 생각과 꿈은 신기하리 만큼 바로 섰다.

    “의사가 되고 싶어요. 실습 나갔을 때 수술방 신경외과 선생님들께서 집도하는 멋진 모습을 보고 결심한 것도 있고, 의사가 되면 몸이 안 좋은 어머니를 제가 좀 더 잘 봐드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제 몸도 잘 챙기고요. 제가 수술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환자분들을 옮겨드렸는데 도움이 됐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도 컸습니다.”

    관절과 허리, 척추, 심장이 좋지 않아 병원을 다녀야 하는 어머니를 보살피느라 스쿨버스를 놓쳐 결석하기도 하고, 문제집도 몇권 없는 방 안에는 제대로 앉아서 공부할 공간 하나 없지만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부산에 있는 고등학교여서 교통비가 8000원, 태희네에게는 너무 큰 지출이기 때문에 하루 등교를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먹고, 가보고 싶은 여행도 제대로 가 본 적 없지만 태희는 그래도 다 괜찮다고 덤덤하게 이야기 한다. 참아내는 것이 습관이 된 태희에게 하고 싶은 것 딱 한 가지만 말해보라 이야기 하니 학원을 한 번 다녀보고 싶다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제가 지금까지 친구들이 다니는 학원을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어서 학원을 다녀보고 싶어요. 수학은 친구가 가르쳐주는데, 영어가 쉽지 않아서요. 열심히 공부해서 환자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좋은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엄마 정현씨는 이 어려움의 늪에서도 잘 자라준 아들을 보며 고마움과 미안함에 연신 눈물을 훔친다. “태희 이름이 아름다움을 나누라는 뜻이에요. 정말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나눌 수 있는 아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글·사진=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도움주실 분 계좌= 경남은행 207-0099-5182-02(사회복지공동모금회 경남지회)

    △2020년 2월 2일 10면 ‘대출이자 감당 못하는 민교네’ 일반 후원액 13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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