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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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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홍도(紅島)- 김언희

  • 기사입력 : 2021-02-25 08: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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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시각각 홍채의 색깔이 변하는 태양

    퉤, 퉤, 퉤, 퉤, 퉤 침을 뱉어대는 파도

    사방으로 튀는 침방울

    좌판 위에서 선잠을 깨는 물고기

    썩어갈수록 싱싱해지는 핏빛 물고기 눈알

    몸을 던질 때마다 트램펄린처럼 튕겨 올리는 수면

    살 떨리게 몰아세우는 時時 刻刻의 혀

    너무 길거나 너무 짧은 혀, 요원한

    G스폿, 요원한 독순술, 詩여

    매 순간이 餓死 직전인

    구멍 없는 매춘부!


    ☞ 나의 활은 늘 정중앙을 향해 살을 날리지만 화살은 번번이 빗나갑니다. 나의 詩도 네 심장을 향해 곧장 날아가지만 늘 귀싸대기만 후려치고 맙니다. 나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말은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지 못한 체 사방으로 침방울이나 튀깁니다. 퉤, 퉤, 퉤, 퉤, 퉤 침을 사방으로 튀깁니다.

    몸을 던질 때마다 트램펄린처럼 튕겨 올라오는 모순의 반응, 모순의 태도, 모순의 의도, 모순의 결과. 우리는 어쩌면 저 모순의 덩어리로 반죽되어 만들어진 기계인지 모르겠습니다. 모순의 생각을, 모순의 삶을, 모순의 일기를 적는, 설계가 처음부터 잘못된 기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홍도(紅島)가 고향인 친구가 있습니다. 나에게 홍도에 한 번 같이 가자고 초청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홍도에 가기를 머뭇거립니다. 살면서 하나쯤은 알지 못하는 곳도 있어야지요. 가보지 못한 곳도 있어야지요. 두고두고 그리워하는 곳도 있어야지요. 내겐 김언희 시인의 시가 꼭 홍도 같습니다. 아무리 초청을 해도 머뭇거려지는 섬 같이. 성선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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