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과거신문보기   |  
2021년 05월 06일 (목)
전체메뉴

[시가 있는 간이역] 콩나물시루-할머니 - 김종영

  • 기사입력 : 2021-02-04 08:04:12
  •   

  • 가슴에 담아두면 병이라도 나는 걸까

    쓴소리 고운 소리 가둔 적 없던 시절

    없는 집 싸리울처럼

    든든했던 할머니

    아랫목 빈자리는 아쉬움만 덩그렇고

    흘려버린 시간들을 또다시 부어봐도

    시루엔 지키지 못한

    그 말씀만 흐른다


    ☞ 왕년에 우리들의 할머니들은 동지섣달 기나긴 밤을 선잠 들다 깨어나서 콩나물시루에 물 한 바가지 끼얹으시고, 또 선잠 들다 깨어나서 물 한 바가지 끼얹으시고, 그러기를 서너 번 끝에야 새벽닭 울음소리를 맞이했습니다. 그때 그 할머니의 콩나물시루는 설날 아침 조상님 차례상에 올릴 지극한 정성이었습니다. 새해 가족의 건강과 후손들의 복을 비는 마음으로 콩나물시루에 잡귀를 쫓는 푸른 시누댓잎을 올리고, 목이 마른 콩들에게 물을 줍니다. 물은 콩들에게 있어 밥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자식들 굶주리지 말고 쑥쑥 잘 자라라는 할머니의 기도였습니다.

    김종영 시조시인의 〈콩나물시루〉를 읽으며 오래된 시간을 소환했습니다. ‘싸리울처럼 든든했던 할머니’의 그 촘촘하던 말씀이 설날을 며칠 앞두고 새삼 떠오릅니다. 화자가 회상하는 시간 속으로 우리도 흠뻑 젖습니다. 이제는 할머니의 부재로 인한 그날의 ‘아랫목 빈자리는 아쉬움만 덩그렇고’ 할머니의 숨결이 담겨있던 윗목 빈 시루에는 지키지 못한 약속이 바람으로 숭숭 지나다닙니다. 한 줄씩 줄을 긋는 주름살과, 한 올씩 보풀을 만드는 흰 머리카락을 헤아리면서, 지난날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겨울밤입니다. 임성구(시조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