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과거신문보기   |  
2021년 05월 06일 (목)
전체메뉴

[시가 있는 간이역] 겨울 들판을 건너온 바람이- 신달자

  • 기사입력 : 2021-01-14 08:00:38
  •   

  • 눈 덮인 겨울 들판을 건너온 바람이

    내 집 노크를 했다


    내가 문 열지도 않았는데 문은 저절로 열렸고

    바람은 아주 여유 있게 익숙하게 거실로 들어왔다


    어떻게 내 집에 왔냐고 물었더니

    여기 겨울 들판 아닌가요? 겨울 들판만 나는 바람이라고 한다

    이왕 오셨으니

    따뜻한 차 한 잔 바람 앞에 놓았더니


    겨울 들판은 겨울 들판만 마신다고 한다


    말이 잘 통했다


    처음인데 내 백 년의 삶을 샅샅이 잘 알고

    겨울 들판을 몰고 와 겨울을 더 길게 늘이고 있다


    차가운 것은 불행이 아니라고

    봄을 부르는 힘이라고 적어 놓고 갔다.


    ☞ 위의 시는 시인의 신간 시집 ‘간절함’에 수록된 시다. 시집 제목을 정할 당시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 앉을 수 있거나 설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하루하루가 절박한 기도로 채워졌다고 한다. 낮아지고 더 낮아지는 기도였을 것이다. 시인은 그 힘으로 다시 앉을 수 있고 걸을 수도 있게 되었다. 비록 그곳이 겨울 들판이라고 해도 적막을 벗 삼아 시를 쓰며 견디고 있다. 그곳에 봄을 부르는 힘이 있다고 한다.

    시인의 고단한 일생을 겨울 들판에 비유한 것은 현실 상황과도 비슷해 보인다. 집 안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가족 간에도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두라고 한다. 벼랑 끝까지 몰아붙일 기세이다. 겨울이 길어질수록, 소망이 유예될수록 봄을 부르는 힘이 간절해지는 때이다. 기고만장했던 인간에게 이 혹독한 시기도 단순히 불행만은 아니라고 알리려는 것일까. 유희선(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