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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5월 0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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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연잎경(經)- 김형엽

  • 기사입력 : 2020-12-24 08: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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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이 왔다고

    함께 흔들리지 않더라

    먼저 흔들리겠다 다투지도 않더라

    먼저 흔들린 잎이

    온몸으로 제 바닥을 닿고 올 때까지

    나중 흔들릴 잎이

    깊은 그늘이 되어주고 있더라

    비스듬히 기울어

    의자도 되고 그릇도 되어주는 잎들이

    오래 휘청거려온 사람들의 걸음을

    한 번쯤은 안온한 수평으로 서게 하더라


    ☞ 비오는 날 연잎을 눈여겨보면 구슬 같은 빗방울을 받아낸 잎은 미세한 울림으로 흔들리다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오롯이 고인 물을 또르르 비워낸다. 또 그 물을 물림 받은 연잎도 일렁임의 시간 속에 잠시 잠겼다가 다시 아래로 물을 쏟아붓는다.

    그런데 오늘, 연잎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각은 비오는 날의 연잎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먼저 머리를 내민 연잎이 바람에 흔들리다가 ‘온몸으로 제 바닥을 닿고 올 때까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흔들리지도 않고, 다투지도 않으면서 ‘그늘이 되어주고’, ‘의자가 되어주고’, ‘그릇도 되어주는’ 연잎에 꽂혀 있다.

    감당할 수 있는 무게만큼만 채웠다가 비워내는 연잎처럼 바람의 흔듦에도 차례를 기다릴 줄 아는 연잎이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오래 휘청거려온 사람들’을 ‘한 번쯤 안온한 수평으로 서게’ 하고 있다. 강신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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