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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5월 11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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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대나무 꼭대기에 앉은 새- 유홍준

  • 기사입력 : 2020-12-17 08: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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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나무 꼭대기에 앉은 새가 먼 데를 바라보고 있다


    대나무 우듬지가 요렇게 살짝 휘어져 있다


    저렇게 조그만 것이 앉아도 휘어지는 것이 있다

    저렇게 휘어져도 부러지지 않는 것이 있다


    새는 보름달 속에 들어가 있다


    머리가 둥글고, 부리가 쫑긋하고, 날개를 다 접은 세다 몸집이 작고 검은 새다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


    창문 앞에 앉아

    나는 외톨이가 된 까닭을 생각한다


    캄캄하다. 대나무 꼭대기를 거머쥐고 있던

    발가락을 펴고 날아가는 새


    ☞ 시인은 창문 앞에 앉아 대나무 꼭대기에 앉은 새처럼 먼 데를 바라보고 있다. ‘먼 데’는 어디일까? 시인의 발자취가 찍혔던 모든 공간의 모든 시간일까? 일순간 불이 꺼진 무대처럼 캄캄하다. 막과 막 사이의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진다. 시인은 문득, 세상 밖에 홀로 동떨어진 듯 그 낯섦에 오롯이 멈춰 있다.

    그러나 그 캄캄함의 배경에는 보름달이 환해서 새의 모양새를 또렷이 밝혀주고 있다. 자연 속에서 이름 없이 존재하는 미물들, 미약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생명에 관한 무한한 긍정과 삶의 예찬이 바로 그 휘장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이다. 때론 이름이란 거추장스러운 번뇌의 단초이다. 번뇌를 거머쥐고 있던 새 한 마리가 발가락을 펴고 하늘로 비상하고 있다. 그렇게 새로운 막은 ‘축복’으로 다시 시작될 것이다. 유희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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