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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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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청동검의 노래 - 임채성

  • 기사입력 : 2020-12-10 08: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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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마나 걸었을까, 무릎 뼈가 시큰하다

    얼어붙은 산과 계곡 자갈뿐인 들을 지나

    신탁神託을 따라나선 길 흙먼지가 자욱하다


    선지자 거울에 비친 바닷가 수정 동굴

    검은 용에 붙들려간 아사달의 왕녀 찾아

    차디찬 동토의 대륙, 봄 다시 맞고 싶다


    횟배 앓는 바람소리 칼집에 갇혀 울 때

    비파형 검을 덮는 이끼 같은 푸른 녹들

    어둠의 역린을 찔러 용의 피로 씻으리라


    성전聖戰의 상처에는 거먕빛 꽃이 핀다

    공주여, 용의 불길에 내 몸이 타거들랑

    해 바른 고인돌 아래 검과 함께 묻어주오


    그대 손이 어루만진 수의라도 입는다면

    선사의 주술 뚫고 한 신화로 깨어나리

    살 비린 피의 내력을 싹둑 끊은 전사로서


    ☞ 어쩌다 12월까지 들어와 버렸다. 뎅그렁, 한 장 남은 달력이 눈앞에 서성인다. 한 번쯤 뒤돌아보며 삶의 깊이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다. 시조를 쓰는 사람이라면, 함축적인 언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운율을 잔에 따라 마실 시간이다. 한 잔 입술에 닿은 불의 운율이 입 안에서 몇 바퀴 돌아서 울대를 넘어 내 심장에 닿는다. 또 다른 불덩이가 되어 신화로 깨어나는 청동검의 노래를 부르는 이가 있으리라. ‘어둠의 역린을 찔러 용의 피로 씻으리라’는 이 강직한 결기를 읽어 내리라. 당신의 칼끝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핏물꽃처럼, 전사의 후예처럼, 죽어도 죽지 않을 거먕빛 혼의 노래여라. 임성구(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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