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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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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영끌’-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

  • 기사입력 : 2020-11-16 21:4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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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권 정치부 서울본부장

    도시 근교 산을 오르다 보면 세태를 절감한다. 만산홍엽의 정취를 만끽할 여유는 잠시다. 산 아래를 굽어보며 이구동성 부동산이 화두다. 손짓하는 아파트마다 몇 달 새 많게는 수십억원까지 치솟은 막막함에 분노와 좌절을 토로한다. 빼곡한 마천루의 위용은 서민에겐 넘보지 못할 철옹성 같은 존재다. 다주택을 처분하기보다 사직을 택한 고위 공직자에게서 ‘부동산 불패’의 확신을 굳힌다.

    ▼“모든 국민이 강남에서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월세가 나쁜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 부(富)가 집중된 강남의 초고가 아파트에 살거나, 소위 사회를 움직인다는 이들이 내뱉은 망언이다. 감히 가진 자 흉내를 내거나 범접하지 말라는 뉘앙스다. 서민의 가슴을 후비는 비아냥으로 해석하기에 충분하다. 한국은 재력이 곧 권력이자 계급인 사회가 됐다.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에 빈곤층은 절망한다. 자고 나면 오르는 집값에 억장이 무너지고 세상 밑바닥으로 내동댕이처진 심정이다. 서울에서 10억원 이하 아파트는 찾기조차 힘들다. ‘영끌’과 ‘빚투’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영혼까지 끌어모으고 빚을 내서라도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한다는 말이다.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이라는 젊은이들이 능력을 발휘할 일자리는 구하지 못한 채 내 집 마련이 인생 목표가 됐다.

    ▼가난은 천형(天刑)이 됐다. 빈곤한 현실은 갈수록 참담할 미래와 대물림의 예고편이다. 자본은 계층 간 경계와 양극화를 명확하게 갈랐다. 젊은층이야 그나마 기회와 희망의 불씨라도 남았다. ‘법구경’에서 빗댄 가난한 노년이다. ‘마치 날개 부러진 왜가리가 물고기 없는 마른 연못에 있는 것과 같다.’ 누군가는 마주할 불편한 진실이다.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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