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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팔도잔디- 김호철(사회부 차장)

  • 기사입력 : 2020-11-11 2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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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전 한일그룹 김중원 회장이 미국에서 별세하면서 마산 한일여고에 졸업생들의 자발적 뜻으로 마련한 분향소가 일주일 동안 차려졌다. 전국에서 찾아온 졸업생과 퇴직 교직원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김중원 회장은 한일합섬 창업주 김한수 한일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아버지에 이어 한일여고 제2대 이사장을 맡아 오면서 교육에 많은 열정을 쏟았다.

    ▼1964년 고 김한수 회장이 설립한 한일합섬에는 중학교를 갓 졸업한 앳된 여공들이 많았다. 가족 생계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마산에 온 여공들의 일손으로 한일합섬은 성장했다. ‘마법의 섬유’로 불리던 아크릴을 생산해 1973년 국내 기업 최초로 수출 1억달러 돌파 기록을 세웠다. 고 김한수 회장은 다음 해인 1974년 한일여고를 개교했다.

    ▼한일여고는 대한민국 최초의 산업체 부설학교다. 한일합섬에서 일하는 소녀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든 학교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가지 못한 여공들에게 교육 혜택을 제공한 것이다. 당시 성장에만 몰두하는 기업들의 노동력 착취 세태를 볼 때, 기업의 학교 설립은 교육에 대한 열정과 철학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었다. 고 김한수 회장은 하루 12시간 2교대 근무를, 하루 8시간 3교대 근무로 바꿔 소녀들이 일하며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한일여고에는 배움의 열정으로 가득한 어린 소녀들이 전국에서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80년 초 학생 수가 7000여 명까지 다녔다고 한다. 돈도 벌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전국 유일한 학교였다. 학생들은 각자 고향에서 잔디를 가져와 그 잔디로 운동장을 조성했다. 한일여고에는 실제로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 팔도의 학생들이 다 모였기 때문에 ‘팔도잔디’ 운동장이 탄생할 수 있었다. 팔도잔디는 한일합섬의 전성기를 잊지 않은 듯 아직도 파릇파릇하다.

    김호철(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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