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작가칼럼] 화석처럼 엎드려- 황영숙(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20-10-29 20:04:50
  •   
  • 황영숙 시조시인

    ‘거름포대 걷어내자 도드라지는 동면/기우뚱 쏠리어도 꼼짝 않는 옴두꺼비/웅크린 축생의 잔등 덤불로 덮어주었다’ -(시 ‘화석처럼’ 일부)

    세월은 잡아도 잡히지 않지만 그 사이에 우주 만물은 끝임 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영원을 이어가고 있다. 시월도 하순, 꽃샘추위를 견뎠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겨울 채비를 할 때가 되었다. 추수를 끝내고, 김장을 하고, 여리고 여린 것들은 곧 겨울잠에 들게 될 것이다.

    지난봄 사과나무에 시비를 하기 위해 쌓아 둔 거름 포대를 들어내었을 때의 일이다. 군에서 배정받은 가축 분 퇴비 50세트는 가로세로 1.5미터, 높이 2미터 정도로 마치 성벽을 쌓아 올린 것처럼 정교하고 탄탄했다. 거름 포대를 하나씩 하나씩 들어내다 보니 어느새 50포대를 다 들어내게 되었는데 마지막 포대를 들어내는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마지막 거름 포대 밑에 옴두꺼비 한 마리가 두 눈을 감은 채 웅크리고 잠들어 있지 않은가. 갑작스레 벗겨진 이불 때문에 저도 얼마나 놀랐을까. 괜히 미안한 마음에 주위에 있는 마른 바랭이 덤불을 모아 덮어 주었다.

    거름 50포대를 어떻게 이불처럼 가볍게 덮고 있었을까. 그 비좁은 틈을 어떻게 찾아 들어가 편하게 잠잘 수 있었을까. 그 작고 물렁한 몸이 어떻게 그 단단하고 무거운 거름 포대를 견딜 수 있었을까. 그 캄캄하고 좁고 오묘한 틈바구니에서 지구의 무게를 재고 있었을까. 아니면 신의 섭리를 생각하고 있었을까. 가련하기도 하고 위대하기도 한 축생을 보고 생각이 혼란스러웠다.

    우리들 주변에는 옴두꺼비처럼 무거운 짐 온몸으로 받으며 견디는 사람들이 참 많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얄궂은 시대에 살면서 배달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그렇다. 온라인으로 생필품을 주문해서 먹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게 되자 추위나 더위는 물론 무게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더 바삐 뛰어야 한다. 폐지를 모아 생계를 유지하는 분들은 숨이 턱에 찰 정도로 무거운 무게를 수없이 견뎌야만 한다. 신은 우리에게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만 주신다고 했는데 신도 이제 죽었을까. 아니 살아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어쩌면 옴두꺼비 한 마리가 하나의 막돌이었는지도 모른다. 혹시나 거름포대가 기울어져서 넘어질까 봐 받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거름포대의 틈새를 메워주며 봄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손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을 버티는 기울기가 이처럼 위대한 줄 미처 몰랐다. 실로 경이로운 일이다.

    밭둑에 석축을 쌓은 지 5년이 지났는데도 나는 석축을 이루고 있는 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저 밭의 흙이 떠내려가지 않게 돌담을 쌓아 놓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보잘 것 없는 작은 막돌들이 큰 돌이나 바위를 기울어지지 않게 잘 받쳐주고 있다는 것을 나는 쉽게 알아채지 못했다. 울퉁불퉁하거나 모나거나 뭉툭하거나 납작하거나 저마다 생긴 대로 틈새에 맞게 잘 끼워져 있는 모습을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걸고 어울려 잘 견디고 있는 모습을 왜 몰라보았을까.

    석탑의 옥개석이 아니면 어떤가. 강원도 삼척의 죽서루 기둥 받침대가 아니면 어떤가. 촉석루나 동대문, 수원 화성의 성곽을 받치는 돌 아니면 또 어떤가. 한 몸 들일 때 없어 시골 담장 어느 구석 막돌로 엎드려도 제자리 잡고 앉아 한 생을 보내다 보면 천년을 무늬 새기며 견딜 수도 있잖을까.

    황영숙(시조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