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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마스크를 고쳐 쓰며- 이재성(시인)

  • 기사입력 : 2020-08-27 20: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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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19가 익숙해지지 않는다. 2단계로 격상돼 또다시 삶의 분위기를 흔든다. 확진자의 움직임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 나타난다. 익숙한 상호명이 머릿속에 그림을 그린다. 나도 모르게 그곳을 피하게 만든다. ‘안전 안내 문자’가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동안 경제와 방역 사이 갑론을박이 뜨거워진다. 문해력을 동원해도 극과 극으로 치닫는 여론은 서로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서로 다른 기준에 변화가 없다. 막대그래프로 표현된 확진환자, 검사진행, 완치자, 사망자 수치가 높아진다. 누적된 숫자들이 자릿수를 늘리고 있다.

    불안의 연속이다. ‘의료진 덕분에’ 챌린지 수어가 ‘덕분이라며’ 챌린지로 변하는 동안 ‘존중’이 무너지고 있다. 코로나19에 대응해 일선에서 희생하고 있는 의료진. 직업윤리의식이 살아있음을 실천 중인 의료진이다. 의료진과 방역당국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한순간 뒤집어지고 있다. 너무 쉽게 뒤집어버린 수어다. 전공의 의대생을 중심으로 뒤집은 수어가 유독 슬프다.

    국민들이 원하는 의료 서비스의 수준은 높아지고 있다. 다양성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소위 돈 되는 전공으로 편향되거나 지역에 뻗지 못한 의료가 있다. 특권층으로 생각되는 직군이 수평을 찾기 위해선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공공병원이 부족한 현실과 의대 정원을 늘리려는 정부 사이 서로의 명분에 대한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오고 있다.

    분명 정부는 공공선을 명분으로 개인의 자유를 막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켜야 되는 사회규범이 존재한다. 코로나 시대에 ‘나 하나 쯤이야’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압축으로 표현되는 대한민국의 성장이 가져온 부작용이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코로나로 인해 되돌아보는 사회상은 변화를 꿈꾸는데 인식의 장벽을 허물기란 쉽지 않다. 같은 현상을 가지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어떤 관점을 가질 것인가. 길어지는 이익 싸움의 끝은 무엇일까. 피로의 파도가 밀려온다. 그렇지만 무관심할 순 없다.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가 쌓인다.

    옳고 그름을 떠나 ‘나 하나 만이라도’라는 말을 생각하게 된다. 위기 속 정부의 역할이 확대되는 만큼 이상하게 개인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공동체가 무너지고 개인이 재발견된 시대. 개인들이 지킨 ‘선’도 보상 넘어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다.

    현관 문고리를 잡다 문득, 경계에 선다. 먹고살기 위해 매일 열었던 문 앞에서 마스크를 고쳐 쓴다. 손에 힘주어 문을 열면 어제와 다른 오늘이 있다. 환경이 달라졌다. 기록을 갱신한 긴 장마와 무더위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태풍이 부는 세상이다. 이불 밖은 위험하지만 순간 고개를 돌리면 잘 다녀오라 손 흔드는 한 가정이 있다.

    다시금 현관 거울을 쳐다보며 다가온 오늘 하루 일정을 되뇐다. 생업에 뛰어들어 수없이 여닫았던 문 앞이 오늘따라 낯설다. 느슨하지만 새로운 공동체 회복을 원한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 한 개인의 천 개 페르소나 중 또 다른 하나의 가면을 고쳐 쓴다. 문고리를 더욱 힘껏 잡아 문을 활짝 열어본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라는 말을 듣기 위해.

    이재성(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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