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들 - 고증식
- 기사입력 : 2020-07-30 08: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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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 한 장이
밥이 되고
국이 되고
구이가 되던 시절
구멍 난 연탄 한 장이
한숨이고
눈물이고
포만도 되던 시절
일 나갔다 돌아온
어느 겨울밤
부엌바닥에 쓰러진
아내를 둘러업고
응급실 달려가기도 했는데
아득하다
연탄 한 장으로
서로를 불붙이던
뜨겁던 날들
☞ 오락가락하는 장마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는 날, 책장에 오래 묵혀둔 시인의 시집을 꺼내 펼쳐놓고 빨갛게 피어오르는 연탄 한 장이 뿜어내는 따뜻한 온기를 오랜만에 온몸으로 느껴본다.
시인이 살아왔던 시절은 연탄 한 장에서 피어오르던 열기로 가족의 끼니를 해결하고, 방구들을 덥히던 힘겨웠지만 뜨거웠던 날들과 때로는 가슴 아파했던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검은 시절이었다.
‘구멍 난 연탄 한 장이 한숨이고, 눈물이고, 포만도 되던 시절’ 어렴풋한 그 시절이 오늘 새삼스레 마음에 파고드는 것은 습기를 잔뜩 머금은 채 들쑥날쑥한 장마 날씨 때문일까? 아님 어수선한 요즘의 사회분위기 때문일까? ‘연탄 한 장으로 서로를 불붙이던 뜨겁던 날들’ 그리워진다. 강신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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