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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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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아직도 가정폭력이라니- 염진아(변호사)

  • 기사입력 : 2020-05-11 20: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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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진아 변호사

    몇 해 전 70대 어르신이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무작정 집을 나선 후 가족들의 도움을 얻어 이혼소송을 제기한 사건의 소송구조를 맡았다.

    필자는 폭력의 가해자인 남편의 대리인이었는데 할아버지는 이미 치매초기이고 신체적 건강도 좋지 않아 치료를 받으시며 예전 기억들을 많이 잃어버린 후였다.

    만약 할아버지의 현재 아픈 상황들을 고려하여 격렬하게 부양의무를 운운하며 다투었다면 소송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을 텐데, 할아버지는 예전 기억들이 희미하거나 잃어버렸어도 부인이 이혼소송을 청구한 것에 대해 괘씸해하면서 이혼에 대한 합의는 쉽게 이루어졌고, 결국 사건은 조정으로 마무리되었다.

    재산도 거의 없어 재산분할도 많이 받지 못하고 연금 조금씩 나누는 정도의 이혼이었는데, 법원 계단을 내려가던 할머니가 ‘이제 맞고 살지 않아도 되니 다 괜찮다’고 가족들과 서로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생각이 많아 졌던 사건이다.

    여성가족부는 3년마다 가정폭력의 실태조사를 한다. 2016년 그리고 2019년에 가정폭력 실태조사가 있었고, 지난 1년간 배우자에 의한 신체적·성적 폭력피해율은 여성 5.9%, 남성 1.3%이며 배우자에 의한 신체적·성적·경제적·정서적 폭력피해율은 여성 10.9%, 남성 6.6%에, 이 4가지의 폭력에 ‘통제’를 포함 시키면 여성 28.0%, 남성 26.0%로 나타났다.

    아직도 배우자가 있는 100명 중에 약6명의 여성이, 1~2명의 남성도, 신체적·성적으로 폭력 피해를 당하고 있다. 2020년인데 말이다.

    배우자의 폭력에 대응방법을 물었더니 아무대응을 하지 않거나(45.6%), 맞대응을 하거나(43.1%), 도망(12.5%)을 하였는데 외부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1%로 매우 적은 수치다.

    여성가족부의 가정폭력 실태조사는 배우자뿐 아니라 가족 내 구성원 서로 간의 폭력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신체적인 폭력뿐 아니라 정서적 폭력도 조사한다. 또한 최근의 데이트 폭력에 이어 이별 폭력이라 부르는 헤어짐에 대한 폭력의 수치와 그 잔혹성에 대해서 경고 한다.

    가정폭력을 경험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더 많고, 당연히 그렇게 자신의 안전이 가정 내에서 보호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생각보다 가정폭력으로 이혼을 상담하러 오는 사람이 많다는 점과, 이혼 상담 후 결국 가정폭력이 자녀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져서 이혼을 결심하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필자는 생각한다.

    사소한 가정폭력, 예를 들어 화가 난다고 욕설을 하다가 기분이 풀리면 이를 그만한다거나, 화가 났을 때 물건을 던진다거나, 이런 것에서부터 싸우면 배우자를 폭행하는 경우까지 이러한 행동을 방치하면 폭력은 폭력성을 점점 키워나간다.

    같은 일이 반복되어도 다음에는 더 많이 화가 날 것이고 이때는 더 많은 화풀이가 필요해지면서 배우자를, 그리고 그다음에는 아이까지 이어지는 가정폭력이 생겨나는 것이다.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라. 나를 때리면 경찰에 신고하자. 아이의 아버지라 처벌까지 하고 싶지 않다하더라도 신고하라. 신고가 곧 처벌이 아니고 가정폭력의 처벌이 곧 구속도 아니다.

    마음을 할퀴거든 가족들에게 말하여 대화의 장을 만들자. 가족들을 제 편으로 만들어 2차 싸움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가족들이 2차 싸움을 만들 것 같으면 심리상담소를 가서라도 대화를 하자.

    가해자가 나쁜 것이 천번 만번 맞다. 그렇지만 피해자도 행동하자. 감시와 통제에서 벗어난 때, 화가 풀리고 대화가 가능할 때, 가급적이면 이런 일이 일어난 초기에, 그리고 지금이라도.

    염진아(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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