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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악의 평범성, 비판 없이 순종하는 것도 큰 죄다- 이상준(한울회계법인 대표 공인회계사)

  • 기사입력 : 2020-02-02 20:3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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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리학에서 ‘동조(conformity)’는 자신을 집단에 맞추려는 경향을 말한다. 즉 비판의식이 없을 경우 우리는 다른 사람의 판단에 굴복하게 되고, 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큰 죄’를 짓게 돼버리는 것이다. 여기에 개인의 이기심까지 더해지면 그 파장과 폐해는 걷잡을 수 없다, 우선 두 가지의 사례를 보자.

    첫째, 1961년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이 실험한 ‘권위에 대한 복종’을 보여주는 사례다. 밀그램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문제를 내고 죄수들이 오답을 말할 경우 15Ⅴ씩 전압을 높여 전기 충격을 가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전압이 400V를 넘어 죄수들이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다 결국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실험 참가자 65%는 실험 감독의 요구에 순종하며 계속 전압을 올렸다. 정상적인 사람이 자신의 양심을 포기하고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 복종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험 결과는 세계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 실험은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권위자가 지시를 내리기만 하면 별 저항 없이 금세 짐승과 같은 사디스트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밀그램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만들어진 인성이 아무리 정의로운 것이라 할지라도 그 시민들이 만약 옳지 않은 권력의 지배를 받게 된다면 그들 역시 인간의 야만성과 비인간적인 태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둘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주장한 ‘악의 평범성’이다. 2차 세계대전 중 600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을 학살한 ‘홀로코스트’는 아돌프 히틀러의 지시와 나치 2인자 하인리히 힘러의 최종 지휘 책임 하에,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 1906~1962)이 가장 체계적으로 또 ‘탁월한 방식’으로 수행했다. 전쟁이 끝난 뒤 히틀러와 힘러는 자살했고 많은 전범들이 뉘른베르크에서 재판을 받았지만(1946년), 아이히만은 사라졌다. 그는 1960년 5월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체포·압송돼,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세기의 재판을 받아 1962년 사형이 집행됐다.

    독일 출신의 유대인으로 세계적인 정치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체포 소식을 듣고 미국에서 예루살렘으로 건너가 재판을 참관했다. 사람들이 예상했던 아이히만의 모습은 악마와 같은 희대의 살인마였다. 하지만 아렌트가 묘사한 아이히만은 지극히 정상의 정신 상태를 하고 있었고, 가족을 챙기는 부족함 없는 아버지이며, 자기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는 공무원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주어진 (나치의) 법을 잘 수행하는 시민이었다. 다만 그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타인의 입장에 서서 생각할 줄 몰랐으며, 자신이 행하는 일의 의미를 물어보지 않고 그저 맡겨진 일에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행한 일의 결과는 엄청난 악이었지만, 그 악의 뿌리는 오히려 평범한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특정 자식만 편애하는 가장, 맘에 드는 몇몇 직원만 편애하는 사장, 옳든 그르든 무조건 자기를 따르는 백성만 편애하는 군주. 이런 사회에서는 늘 내편 네편으로 갈라져 끊임없는 투쟁과 혼란만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함량 미달이다. 바로 작금의 대한민국 위정자들과 같다. 이런 지도자 주변에 있는 자들 또한 반성과 비판은커녕 ‘악의 평범성’처럼 수장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두둔하기에만 급급하다. 어쩌면 이미 너무 큰 선을 넘어버려 이성적 판단은 깡그리 무시하고 살기 위한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감언이설에 낚이지 말고 비판의식으로 냉철하게 판단하여 ‘양의 탈을 쓴 늑대’를 단죄해야 한다. 지혜롭고 선한 리더를 뽑는 것이 ‘악의 평범성’에서 벗어나는 1차 관문임을 명심하자.

    이상준(한울회계법인 대표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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