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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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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워터게이트사건의 교훈- 허승도(논설실장)

  • 기사입력 : 2020-01-15 20:2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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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워터게이트사건이 정치인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아마도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검찰의 수사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일 게다. 예상하지 못한 후폭풍이 불 수 있기 때문이다.

    워터게이트사건은 1972년 닉선 대통령의 재선을 획책하는 비밀공작반이 민주당 전국위원회본부에 침입하여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되면서 시작돼 닉슨정권의 선거방해, 정치헌금의 부정·수뢰·탈세 등이 드러나 1974년 대통령직을 사임하는 것으로 끝났다. 미국 역사상 임기 도중에 대통령이 사임하는 최초의 일로 큰 오점을 남겼으나, 의회가 역할을 제대로 하여 민주주의 전통을 수호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반세기 전에 발생한 워터게이트사건의 전개 과정을 보면 현재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건 초기에 FBI가 수사에 착수한 후 닉슨 대통령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건을 축소·은폐하기 위해 나섰고, 워싱턴 포스트에서 계속 보도되자 친닉슨 성향 언론들이 ‘가짜뉴스’라고 공격했다. 최근 유재수 전 부산부시장 감찰무마사건과 울산시장 선거개입사건 등 청와대를 향한 검찰 수사를 둘러싼 모습과 닮은꼴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워터게이트사건은 도청기를 설치한 범인에 대한 검찰의 기소와 유죄 판결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점이다. 닉슨 대통령이 재임에 성공한 후 도청사건을 조사하던 상원 청문위원회에서 ‘닉슨 대통령이 사건 은폐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녹음이 있다’는 핵폭탄급 증언이 나왔고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특검)가 백악관에 녹음테이프를 증거로 제출하라고 요구하면서다. 이에 닉슨 대통령이 법무장관과 차관에게 특검 해임을 지시했으나 이들이 거부하자 차관보를 통해 특검을 해임한 후 장관과 차관까지 해임하는 ‘토요일 밤의 대학살’을 단행했다. 이로 인해 닉슨 대통령은 의회에서 권한 남용과 사법절차 방해로 탄핵 직전까지 몰렸고 결국 자진 사퇴했다.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한 특검 해임이 결정적인 탄핵사유가 됐다.

    정권 비리를 수사하던 윤석열 검찰총장 참모들을 모두 교체한 지난 9일 검찰인사를 일부 언론에서 워터게이트사건의 토요일 밤의 대학살에 빗대 ‘수요일 밤의 대학살’이라고 꼬집었다. 살아있는 권력 수사 방해를 위한 전격 인사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워트게이트사건에서는 법무부장관이 특검 해임을 반대했으나 ‘수요일 밤의 대학살’은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적극 가담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야당 의원 시절인 2013년 국정원 댓글 수사를 하던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이 수사팀에서 배제되자 “수사책임자를 내친 상황에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사결과가 나오겠느냐”며 비판했던 추 장관이 말이다. 추 장관은 대검 참모와 검사장 인사에 그치지 않고 수사부서 대폭 축소 추진, 총장 직속 수사팀 설치 차단 등 정권 수사를 막는 봉쇄망까지 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의 정치 수준을 비교할 수 있는 대목이다.

    21대 총선을 불과 3개월 앞두고 국민들로부터 ‘합리적 의심’을 살 수밖에 없는 검찰인사를 단행한 이유와 그 힘은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하다. 무엇을 그렇게 감추고 싶은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절박감과 함께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미끼로 구성한 ‘4+1협의체’의 힘을 공수처 설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법 등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과정을 통해 이미 확인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리멸렬한 야당도 한몫을 했다.

    범여권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검찰 개혁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번 검찰에 대한 조치는 법치주의 영역을 정치권력으로 깔아뭉갠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국민들에게 묻고 싶다.

    허승도(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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