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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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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갑 속의 을’, ‘을 속의 갑’- 왕혜경(수필가)

  • 기사입력 : 2019-11-28 20: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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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띵똥 띵똥 띵똥 띵똥’

    급하게 울리는 벨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이 집에 이사 온 후 아무도 우리 집 벨을 그렇게 누른 사람이 없었는데 무슨 일이지? 더구나 이런 새벽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나? 하는 걱정과 놀람. 시계를 보니 다섯 시였다.

    급히 일어나 현관으로 가는데 이제는 현관문을 손으로 쿵 쿵 치기까지 한다.

    “누구세요?” 조심스럽게 묻는 내 목소리는 내가 들어도 조금 떨고 있었다.

    “투싼 차주 되시죠?” 라는 웬 남자의 목소리.

    ‘아하! 이중주차 때문에 집까지 올라왔구나’ 싶어 다소 안심이 되면서도 급하게 옷을 입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태풍이 온다길래 어젯밤 지하주차장에 차를 넣으러 들어가니 이미 주차장이 꽉 차 이중주차를 할 수 밖에 없었고, 이중주차를 한 차가 한두 대도 아니어서 기어를 중립에 놓고 차를 밀 수 있게 해 놓은 다음 올라왔었다. 동호수와 휴대폰 번호까지 차 앞 유리에 붙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새벽같이 집으로 올라와 요란하게 벨을 누를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

    일단은 이중주차를 해 상대를 불편하게 한 내 잘못이 커 얼른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부터 뺐다. 벨을 요란하게 누르고 문을 쿵 쿵 치기까지 하는 상대의 서슬에 빨리 무슨 조치를 취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위기감이 느껴졌기 때문에 나도 정상적인 사고를 할 여유도 없었다.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타러 갈 때도, 주차장에 내려가 차를 뺄 때에도 나는 그 사람의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 그 사람이 그렇게 요란하게 나를 깨우곤 먼저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타 시동을 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화를 몇 번 해도 받지도 않고, 통화가 된 후에도 바로 내려와 차 빼 줄 생각은 않고 느릿느릿 내려와 별 미안한 기색도 없이 차를 빼는 후안무치한 사람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나는 얼굴도 보이지 않는 그 사람에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얼른 차부터 뺐던 것이다.

    그런데 집에 올라와서 차분하게 다시 생각하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중주차가 되어 있을 때의 일 처리 순서는 일단 기어가 중립에 있는지 확인을 한 후 차를 밀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전화를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집에 올라와 벨을 누르는, 정말 이도 저도 안 될 때의 마지막 단계가 집으로 찾아가 대면 처리하는 단계가 아닐까?

    내게도 수면권이 있는데 아침 일곱 여덟 시도 아니고 새벽 다섯 시에 그렇게 요란하게 집까지 올라와 벨을 누르고 문까지 쿵 쿵 치는 행동은 누가 생각해도 정상적인 일 처리 방식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나는 혼자 살고 있으니 그 시간에 수면을 방해받은 사람도 나 혼자뿐이었지만, 만약 가족이 있고 가족 전부가 다 그렇게 수면을 방해받았다면 이건 정말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한 번쯤은 다퉈봐야 할 사안이 아닐까?

    세상사 살아가는 일에 절대적인 옳음과 절대적인 그름이 없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가 가치 기준만큼은 분명하게 서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가치의 기준은 ‘절대 남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폐 끼치지 않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갑을 논쟁으로 사회가 뜨겁다.

    ‘갑 속의 을’, ‘을 속의 갑’을 볼 수 있는 이해와 공감능력이 아쉬운 요즈음이다.

    왕혜경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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