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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말- 짐승보다 낫거나 못하거나 - 김미숙(마산문인협회장)

  • 기사입력 : 2019-11-04 21: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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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눈 가리고 귀 막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부쩍 늘어난 시위 현장을 중계하는 TV 뉴스화면에 비친 플래카드도 그렇고 인터넷 뉴스에 붙는 댓글은 말 할 것도 없다. 이미 청소년들의 언어문화는 심각할 정도로 오염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심지어 초등학생 입에서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욕이 험하게 튀어나올 때는 깜짝 깜짝 놀라기 일쑤다. 교육자이자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현상에 대처할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것에 절망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들의 언어가 욕설과 거친 말로 오염되어가는 것은 백 퍼센트 어른들의 잘못이다. 어른들이 지혜롭고 교양 있는 언어를 사용하면 아이들도 그 언어를 배워 사용하고 그 과정에서 지혜와 교양을 축적한다, 그것은 아이들의 정서가 되고 아이들의 성품이 되며 절제와 미덕을 아는 성품을 쌓아가게 된다. 반대로 어른들이 분노와 저주의 언어를 사용하면 아이들도 분노와 저주의 말을 습득하며 그것이 그 아이의 성품이 되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현상을 부추겼을까. 나는 그 상당부분을 정치인들에게 혐의를 둔다. 나는 보수니 진보니 하는 것은 모른다. 정치에 대해서도 문외한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이라는 사실은 확실하게 알고 있다.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은 매일처럼 뉴스 화면이나 신문을 장식한다. 바꾸어 말하면 정치인들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시민들의 감정과 정서를 자극하고 그것이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며 성장하는 아이들의 정서 깊숙이 뿌리내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선진국 정치인들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상대에게 웃으면서 세련된 유머로 공격을 한다. 링컨은 상대 정치인이 자신더러 ‘두 얼굴을 가진 못 믿을 사람’이라고 말하자, “내가 얼굴이 두 개라면 이 중요한 자리에 하필 못생긴 얼굴을 갖고 나왔겠습니까.”라고 말 한 일화는 유명하다.

    또 처칠이 하원의원 출마했을 때 상대방이, “처칠은 늦잠이나 자는 게으름뱅이입니다. 의회로 보내서는 안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처칠은 “여러분도 나처럼 예쁜 아내와 살아보십시오. 아침에 결코 일찍 일어나지 못 할 것입니다.”라고 말해서 청중들의 박수를 받았다.

    한국 정치인들은 유머감각이 부족하다. 그것은 마음에 여유가 없다는 뜻이 아닐까. 남의 말을 듣기보다 내 생각을 먼저 고집하고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우선 흥분하며 직설적이다.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알랭 드 보통은 ‘가장 곤란한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고 나오는 대로 말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에는 생각하고 말하라는 뜻이 충분히 들어 있다. 생각하지 않고 뱉은 말은 상대를 설득하지 못한다. 설득되지 않으면 분노가 일고 상대를 증오하며 저주의 언어를 내뱉게 된다.

    언어가 거칠어지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한 번 망가진 언어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말은 정신을 가지런히 진열하는 가구와 같아서 부수기는 쉽지만 수리하기는 어렵다. 망가진 말을 다시 다듬고 교양을 담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어른들이, 정치인들이, 교육자들이, 종교인들이 그리고 예술인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면 정말 좋겠다. ‘말이 있기에 사람은 짐승보다 낫다. 그러나 바르게 말하지 않으면 짐승이 그대보다 나을 것이다.’라고 한 중세 페르시아의 시인 사디의 말을 떠 올려 본다.

    김미숙 (마산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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