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천분교 - 박혜선
- 기사입력 : 2019-05-29 20:2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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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선생님은 떠났지만
학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기로 했다
책 읽는 소녀가 학교 화단에 남아 여전히 책을 읽고 있었고
이순신 장군이 큰 칼을 차고 소녀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군님, 장군님. 무거운 갑옷 입고 얼마나 더우세요?”
화단에 난 풀들은 덩굴손 칭칭 감아 옷을 입혀주었다
“장군님, 장군님. 큰 칼도 내려놓으세요.”
큰 칼이 푸릇푸릇 나뭇가지가 되었다
풀벌레들이 장군님 몸을 오르내리며 놀았다
참새가 어깨에 내려앉고 칼끝에 잠자리가 쉬었다 갔다
드디어 오늘,
책 읽던 소녀는 나팔꽃 원피스를 입었다
꽃무늬 원피스 나풀거리며 고무줄놀이하기 딱 좋은
초가을 아침이었다.
☞분천분교는 경북 봉화에 있는 아주 작은 학교라고 한다. 하지만 이곳이 어디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시를 읽으며 저마다 한 번쯤 가봤던, 아이들과 선생님이 떠나고 텅 빈 운동장만 덩그러니 남은 폐교를 떠올렸을 테니까. 시인은 그런 학교에 따뜻한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책 읽는 소녀상에 핀 나팔꽃을 보고 같은 무늬의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햇살 아래 치마를 나풀거리며 고무줄 놀이하게 하는 기발한 상상. 시적 상상력이 아니면 가능했을까?
해마다 6월 첫째 주 토요일이면 우리 지역 고성에서 아동문학잔치가 벌어진다. 고성 연지리 동시동화나무의 숲에서 펼쳐지는 ‘열린아동문학상 시상식’이 그것이고, 이 시는 올해 동시 수상작이다. 아마도 이날 분천분교에서 책 읽던 소녀도 나팔꽃 원피스 나풀거리며 이순신 장군님과 참새, 풀벌레도 함께 놀러오지 않을까? 장진화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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