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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5) 인술구인(仁術救人) - 어진 기술로 사람을 구제하다.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9-05-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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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적도 근방에서 흑인들에게 의술을 베풀어 ‘밀림의 성자(聖者)’로 추앙받는 독일 출신의 슈바이처는 전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1952년 이미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세계적인 위인 반열에 올라 있다.

    대암(大岩) 이태준(李泰俊) 선생은 ‘몽골의 슈바이처’로 추앙받은 분인데, 2017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언급해 많은 사람들이 알지만, 1990년까지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1990년에 대한민국 정부에서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해 국민들에게 알려졌고, 2008년에는 고향 함안에서 이태준 선생 기념사업회가 결성돼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18년부터 함안군 당국에서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을 옛 군북역 부지에 4000㎡ 규모로 조성하고 있다.

    2017년에는 독립기념관에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해 각종 기념식을 가졌다. 이 선생은 1883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다가, 1907년 세브란스 의학교에 입학해 1910년 졸업해 의사가 됐다.

    그러나 1911년 일본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사건을 조작한 일제에 의해 체포될 위험에 직면해 중국 남경으로 탈출했다. 남경에서 독립운동가 김규식(金奎植) 선생을 만났는데, 몽골에 비밀군관학교를 세울 계획을 갖고 있던 그의 권유로 다시 몽골로 가게 됐다. 가는 길에 죽어가는 환자를 보고 정성껏 치료한 것이 계기가 돼, 몽고에서 동의의원(同義醫院)을 개설해 죽어가는 많은 환자들을 구제했다. 당시 몽고에는 성병 등 전염병이 만연했는데, 단순히 주술적인 치료만 하고 있었다. 몽고 사람들은 그를 ‘살아있는 부처’로 생각했다. 몽고 국왕이 죽어가는 많은 국민을 구제하는 것을 보고 훈장을 수여하고 자기의 주치의로 임명했다.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 의료사업이 아니고, 순수한 인간애에서 우러나온 인술을 베풀었다. 그때 번 돈은 상해임시정부 등에 보내 독립운동에 쓰도록 했다. 의열단에도 가입해 김원봉 등을 만나 폭탄 제조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소련 공산당에서 보내는 독립지원금의 운반도 했다. 그러나 그때 몽고를 점령한 러시아 군대에 의해서 선생과 부인, 딸 등은 참혹하게 피살되고 말았고, 1945년 이후 그의 행적은 한국 사람들의 머리에서 완전히 잊혀졌다. 2001년에 몽고의 서울 올란바토르에 그의 기념공원이 세워져, 몽고에서도 그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있다.

    지난 4월 말 함안의 몇몇 뜻있는 인사들과 함안고등학교 학생들을 데리고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을 방문했다. 의학을 배워 돈벌이가 아닌 인류를 위한 베푸는 정신을 실현한 이태준 선생의 정신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 仁 : 어질 인. * 術 : 기술 술.

    * 救 : 구제할 구. * 人 : 사람 인.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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