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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6월 25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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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지금, 돌아서서 나를 만나다- 도희주(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19-04-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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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도서관상주작가지원사업에 선정돼 지난해 12월 1일부터 경상남도교육청 진영도서관에 출근하고 있다. 지원사업 신청 시 프로그램 중 자서전 쓰기를 기획했다. 자서전보다 더한 소설은 없다. ‘내 살아온 이야기는 책 몇 권 된다’지만 막상 쓰려면 망설이는 그분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몫은 용기를 주는 일이었다. ‘은빛스토리텔링-자서전 쓰기’ 이름으로 14주 동안의 강의 여정이 이어졌다. 그 짧은 시간에 평생의 이야기를 다 정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일단 시작하니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고 있었다. 동병상련에 공감과 위로에 때론 한숨과 눈물도 그치지 않았다.

    어르신들은 대부분 자필이라 원고를 받아 워드작업하는 동안 한 문장 한 문장에서 그분들의 거친 숨소리를 숨죽여 듣고 지친 발걸음에 마음 졸였다. 평탄하던 인생의 중년에 찾아온 가족과 자신의 병고를 극복하신 분, 중학교 때 엄마를 여의고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분, 출생 이듬해 6·25 전쟁터에서 아버지를 여의고 엄마도 잃었으나 뒤늦게 생모의 소식을 접하신 분, 세상을 대하는 자세가 남달리 호기롭고 자신감에 차 있었지만 아내의 만류를 듣지 않고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빈손을 경험하신 분, 탄탄대로를 달리다가 한순간에 좌절의 나락으로 떨어진 경험을 가진 분, 4대 독자로 태어나 여섯 살 때 부친이 보도연맹사건에 연루돼 목숨을 잃은 데다 설상가상 동네 형의 한순간 실수로 평생 장애를 안고 오늘을 살아가시는 분. 후회로 점철된 일곱 분의 따로 함께한 생생한 이야기가 ‘지금, 돌아서서 나를 만나다’로 엮어 출간을 앞두고 있다.

    글로써 남기지 않은 말들은 한낱 푸념에 지나지 않는다. 아픔의 뭉치들을 꺼내느라 끊었던 담배를 피우고, 밤을 뜬눈으로 보내고, 아득한 그리움과 서러움을 불러놓으며 열병을 앓기도 하고, 한밤중에 두 번이나 응급실 가시기도 하고, 몇 분은 중도에 그 아픈 고개를 차마 넘지 못하고 그만두셨다. 나 역시 그분들의 고통을 온몸으로 감내해야 했다. 자서전 강좌를 선배 작가들이 말린 이유를 체득해가는 중이었다.

    막상 강좌가 시작됐으나 도서관 측에선 한동안 우려도 없잖아 있었다. ‘과연 어르신들이 말로만 하셨던 얘기를 글로써 담아낼 수 있을까?’ 그러나 어르신들은 마치 의기투합한 듯 14주를 꿋꿋하게 견뎌내셨다.

    원고를 인쇄소에 넘긴 며칠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토록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오셨을까? 우리가 지금 추구하는 행복은 어느 궤도에서 찾을 수 있는가? 한숨을 돌리며 근년에 작고하신 부모님 생각에 또 며칠 우울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타인의 자서전을 도와주면서 정작 당신의 이야기는 진작 담지 못한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지난 14주는 내가 그분들을 도운 게 아니라 그분들로부터 인생의 지혜를 특급 과외 받은 느낌이었다.

    일곱 분은 한결같이 말씀하셨다. 생전에 꼭 자서전을 쓰고 싶었으나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진영도서관의 특별강좌 소식을 접하고 무척 반가웠다고. 또 자서전 쓰기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준 진영도서관장과 관계자에게 감사드린다고.

    필자는 소망한다. 이후 이분들의 이야기는 또다시 이어져 완결판의 자서전이 되길. 자서전은 위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중년을 넘겼다면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해야 한다. 틈틈이 기록된 글은, 설령 자서전이 되지 않더라도 긴 인생의 여정에서 가끔씩 돌아서서 자신을 만나는 거울이 될 것이므로.

    도희주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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