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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그림책, 의미와 맥락을 가진 네트워크- 박종순(아동문학가)

  • 기사입력 : 2019-04-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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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마다 하루 기차여행을 즐긴다. 사실은 딱딱한 논문을 따져 읽으며 토론하는 곳을 향하는 길이지만 오가는 기차여행만큼은 즐기는 시간이다. 한 시간 남짓 달리는 기차 안에서 소설이나 시를 읽기도 하지만 어떨 땐 멍 때리기를 해도 여유 있어 좋다. 가끔은 그림책 한 권을 오가는 기차 안에서 보고 또 보며 볼수록 매력 있는 녀석이란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림책이 안겨주는 상상력에 한참을 설레기도 하니 자주 그러고 싶어지는 것이다.

    오늘은 강의 시간보다 세 시간가량 일찍 기차를 탔다. 특별한 그림책 여행을 하기 위함이다. 바로 대구에서 열리는 ‘볼로냐 국제 일러스트 원화전’을 향해. 세계 최대 규모의 어린이 일러스트 전시인 이 원화전은 1967년부터 시작하여 50년이 넘는 현재까지 진행되어 왔는데, 우리나라는 2009년 이후 10년 만에 전시를 열게 되었다. 볼로냐에서는 매년 세계 80여 개국에서 3000명이 넘는 아티스트가 제출한 약 1만5000점의 작품 중에 300~400점의 작품이 선정된다. 물론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비밀리에 위촉된 최고의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이 치열한 논쟁과 협의를 거친다. 그렇게 최종 80여 명의 작가가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며, 작품 전시 기회를 제공받는다. 이렇게 좋은 전시를 놓칠 수가 있겠는가.

    그림책은 글을 중심으로 하는 문학 텍스트와 달리 회화처럼 공간적이면서 영화처럼 시각적인 이미지들이 시의 언어와 만나는 일종의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으로 즐길 수 있다. 붓 자국이나 콜라주, 실크스크린, 동판화 에칭 기법 등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섬세한 스케치 앞에서는 한참 머물러 있기도 하고, 위트 넘치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일러스트를 보면 소장하고픈 욕구가 일기도 한다.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7명의 한국 작가 공간을 따로 마련한 부분도 좋았다. 2000년대 초 교토에 갔을 때 들렀던 ‘그림책관’에서 개관 10주년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던 기억, 그리고 우리 그림책의 발전이 비약적으로 이루어진 점을 생각하며 오늘날 우리나라 그림책 작가들의 위상을 실감하기도 했다.

    볼로냐 심사자들은 그림책에서 독창성, 그림책으로서의 일관성, 작가의 마음 등을 다각도로 본다고 하는데, 어느 한 심사자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심사하는 일은 무척 힘든데 자신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뭔지 모르는데 좋은 것’, “Je ne sais quoi” 이것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뭔지 모를 좋은 것, 사실 그것이 그림책에 빠지게 하는 매력이다. 보고 또 봐도 행간에서 읽히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는, 책장을 넘기는 그사이에도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것, 그게 그림책이다. 삶의 일상성 속에 담긴 에센스를 담아낸 예술형식으로서의 그림책은 어떤 면에서는 성인 문학보다 훨씬 더 복잡한 코드를 가지고 있다.

    일러스트는 현재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일깨운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다른 환경에 있는 사람과도 어떻게 연계되는지,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 알려주기도 한다. 작품에 담긴 삶과 생명과 사랑의 의미를 강하게 느낄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렇게 문화와 감정이 공존하는 공간이 그림책이라는 공간이다. 그래서 의미와 맥락을 가진 네트워크가 되는 의미망을 가진다. 오늘 전시에서 본 스페인 작가 아나 페나스의 ‘멕시코, 배의 이름’ 앞에서 한참을 서성인 것 같다. 그림만으로도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고, 그 역사와 그 시대 사람의 마음을 조금은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림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과거를, 현재를, 미래를 본다.

    박종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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