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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6월 25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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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남강과 한강- 박영기(시인)

  • 기사입력 : 2019-04-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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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평문학제> 포스터를 유동인구가 많을 곳을 찾아다니며 붙이고 있다. 늦은 오후 인디시네마 진주미디어센터 앞에 도착했다. 곧 상영할 영화가 미니멀 시네아스트 박근영 감독의 <한강에게>이다. 서울의 한강을 주제로 시를 쓰는 시인의 이야기다. 영화 속 시인의 삶은 나와 뭔가 다른 게 있을까? 마침, 한숨 돌리기로 한다.

    “괜찮냐고 묻지 말아줘…” “자꾸 괜찮냐고 물어보니까,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말해야 되잖아.”

    애인의 사고 이후 상실감에 젖어 헤매는 영화 속 주인공 ‘진아’의 대사다. 대학에서 시 창작수업을 하고, 시 낭독 모임에 가고, 친구들을 만나고, 괜찮은 것 같지만 괜찮지 않다. 애써 괜찮다고 말해야 하는 진아의 모습에서 상실의 아픔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이 감성적 공감을 제외하면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뭐 색다를 것 없네’라고 말할 수 있는 시인의 일상을 그린 영화다.

    ‘한강’은 진아의 아픈 기억과 아름다운 기억이 뒤섞여 흐르는 추억의 강이자, 진아가 몸담고 있는 문단의 깊고 깊은 강이다.

    주인공의 감정을 따라오라는 카메라의 요구와 상관없이 스크린에 한강이 비칠 때마다 ‘남강’이 겹쳐 보인다. 서울과 진주가 겹친다. 이상과 현실이 겹친다. 화면 속의 저 강은 서울에 위치한 한강이고, 겹쳐 보이는 강은 진주에 위치한 남강이다. 한강은 중앙문단을, 남강은 지역문단을 대변하는 이미지 같다. 서울과의 물리적 거리도 녹록하지 않지만 지방문단과 중앙문단과의 괴리는 가히 서울이라 천 리 길이다.

    한국문단의 힘이 중앙에 집중되어 있다. 진아가 첫 시집을 내려고 찾아간 출판사가 다섯 손가락 중 우위에 있는 메이저급 출판사다. 특히 첫 시집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학연, 지연, 등 인맥이 없으면 불가능한. ‘시의 격으로 승부해야지’라고 하면 할 말 없을 것 같지만, 있다. 메이저급 출판사에서 출간된 시집들이 모두 대한민국 문단을 대표하는 시격을 갖추었는가? 붙들어 쥘 썩은 동아줄 하나 없는 나는 진아가 시집에 사인하는 장면에서 자괴감이 든다. 그리고 한강에 남강이 다시 겹칠 때 오기가 발동한다.

    영화관을 나서며, “괜찮냐고 묻지 말아줘…” “자꾸 괜찮냐고 물어보니까,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말해야 되잖아.” 진아의 대사를 따라 해본다. 정말 괜찮지 않다. 그래 그렇지만 괜찮다. 나는 형평문학선양사업회가 주관하는 <형평문학제>를 운영하는 일원이고 오늘도 이 행사를 위해서 포스터를 붙이고 다니니까. 이것이 나의 문학적 실천이니까.

    ‘형평운동은 1923년 4월 25일 진주에서 조직된 형평사(백정들이 ‘저울衡처럼 평등平한 사회社를 지향’하며 만든 단체)의 활동이다. 당시에는 백정들의 신분 해방과 차별 철폐운동이었으나, 그 운동의 근본정신은 사회 보편적 인류애였다. 지금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미투’나 여러 가지 사회운동의 근본정신이 바로 형평정신이다.

    <형평문학제>는, 진주시민을 위해, 진주시민의 손으로 치르는, 진주시민의 문학제다. 이 문학제는 2014년 제1회를 시작으로 올해 제6회를 맞이한다. 4월 13일부터 19일까지 일주일 동안 진주에서 개최된다.

    박영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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