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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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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맹모삼천지교- 문복주(시인)

  • 기사입력 : 2018-12-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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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했다는 맹모삼천지교는 다 아는 고사이다. 묘지가 있는 곳에 살았더니 아들 맹자가 곡소리와 장례 흉내만 내고, 저잣거리로 이사 갔더니 물건 사고파는 놀이만 하고, 서당 근처로 이사하니 비로소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교육환경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래서인가. 현명한 우리의 부모님들은 SKY대학을 보증한다는 강남땅으로 너도나도 몰려들었다. 강남의 땅값과 집값이 하늘 높이 뛰었다.

    맹모삼천지교의 요즘 해석은 이렇다. 묘지 근처에 산 것은 인생의 참 의미를 가르치기 위함이요, 시장 근처에 산 것은 재력과 경제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함이요, 학교 근처에 산 것은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공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것으로 재해석한다. 교육환경도 중요하지만 본인 자신의 적극적 참여와 조화는 물론 세상을 두루 경험하라는 부모의 지혜도 중요하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생활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간접적인 요소다. 인생의 주체는 본인 자신이다. 어떤 환경에 살더라도 주어진 조건 속에서 참된 가치를 찾아가는 것이 더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내가 교직을 떠나게 되자 어떻게 알았는지 투자 컨설팅 회사 곳곳에서 전화가 왔다. 퇴직연금을 한몫으로 받아 모텔이나 임대건물을 사라는 것이었다. 가만히 앉아 임대 수익금으로 난공불락의 부유한 노후를 누리라는 것이었다. 혹했다. 이런 횡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아내가 온몸으로 막았다.

    돈을 벌려면 돈 있는 곳으로 가라는 맹모삼천지교의 두 번째 저잣거리 교훈을 굳게 믿고 있던 나는 어리석게도 돈이 가장 많이 몰리는 주식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생활은 연금 받는 것으로 하고 일부 비자금으로 주식을 했다. 그 당시 주식은 흥행몰이 유행이었다. 너도나도 뛰어들었고 꿀맛을 조금 보다 결국은 IMF 때 노후자금의 일부 비상금을 털리고 말았다.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값비싼 교육비를 지불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손을 털었다.

    올봄 오백년 전통의 함양향교가 있는 동네에 새집을 지어 마침내 맹모삼천의 세 번째 서당 근처로 이사했다. 그러니 이제부터 책을 가까이하고 글을 써야 하리라. 원래 선생이고 시인이었던 나는 글쟁이다. 누에처럼 글을 먹고 글 똥을 싸야 했는데 딴짓을 했으니 낭패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인생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을 알고 인생의 헛됨과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라는 첫 번째 묘지의 교훈부터 잘 새겨 기초를 튼튼하게 하였더라면 물질세계의 허망됨을 좇지 않았을 것이다. 불로 소득의 부자가 되려는 욕심만으로 돈 시장을 얼씬거렸으니 어찌 부자가 되고 어찌 좋은 글을 썼겠는가.

    맹모삼천지교의 교훈은 재력이나 권력의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니다. 이 세상을 두루 살아가면서 지혜를 가지고 덕으로 살면서 가치 있는 삶을 찾아가라고 가르쳐주고 있다.

    맹자의 스승 공자도 말한다.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고 서른에 자립하고 마흔에 미혹되지 않으며 오십에 하늘의 뜻을 알고 육십에 귀에 거슬림이 없고 일흔에 법도를 넘어서게 된다고 인생을 회고했다. 칠순이 가까운 이제야 공자의 불혹과 종심을 깨닫고 맹자의 맹모삼천지교 교훈을 깨닫고 있으니 나는 만학도임에 틀림없다. 나이가 들수록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잘 새겨 몸은 깨끗이 하고 입은 닫으며 지갑을 여는 마지막 회귀를 잘 정리해야 하리라.

    문복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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