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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1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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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나무야 나무야- 문복주(시인)

  • 기사입력 : 2018-10-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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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양엔 천년의 숲 상림이 있다. 신라 말 진성여왕 때 함양 태수로 온 고운 최치원 선생이 마을의 홍수피해를 방지하려 나무를 심었다. 그 숲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천년이 넘었으니 으뜸일 수밖에 없다. 천년 숲을 거닐다 보면 두 아름 넘는 나무들이 밑둥이 썩어 쓰러져 있는 것을 본다. 줄기 군데군데 구멍이 나거나 옹이가 박힌 나무들도 본다. 나무가 천년 내내 있어 오지는 않았겠지만 아들에, 딸들이 커왔으니 삼사백년은 되지 않았을까? 삼사백년 풍상을 견디어 온 나무 숲 사이를 걷는다는 것은 시간을 거슬러 광해군 때나 영·정조 시대인 옛날의 역사 속을 걷는 것 같아 그 느낌은 사뭇 고즈넉하고 새삼스럽다.

    작년 출판계에서 주목을 받았던 ‘호프 자런’이 쓴『랩걸』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은 과학하는 여자로 살아온 자신의 삶을 나무의 성장에 빗대어 쓴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을 그린 감동 어린 책이다. 타임이 선정한 2016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스미소니언 매거진 선정 최고의 과학책 10, 뉴욕타임스 추천도서, 아마존 선정 최고의 책 20위에 드는 책이니 명성을 말해 무엇하랴.

    뿌리와 이파리, 나무와 옹이, 꽃과 열매에 대해 여성 과학자는 말한다. 창밖을 보라. 무엇이 보이는지? 사람, 자동차, 건물, 인도, 고안, 설계, 채굴, 용접, 벽돌쌓기 등. 다시 창밖을 보라. 초록색이 보이는지. 보았다면 당신은 지금 세상에서 사람들이 만들지 못하는 몇 남지 않은 것들 중에 하나를 본 것이다라고 말한다. 지구 육지의 3분의 1이 숲이었다. 인간은 지난 10년 동안 500억 그루의 나무를 베어냈다. 프랑스 나라 크기의 숲이 사라져갔다. 파괴된 숲은 다시 복구하지 못한다.

    나는 숲을 거닐며 사색에 잠긴다. 폭염에 태풍에 지진에 마음 편한 날 없다. 눈뜨면 어제 있던 도시가 쓸려나가거나 폭싹 무너져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폐허의 잔재를 본다. ‘오, 주여, 이제는 제발…’ 나지막이 기도한다. 최첨단 과학시대에 최고의 재앙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구의 재앙은 곳곳에서 점점 심해진다. 이 모든 것이 자연 파괴에서 온다고 과학자나 생태환경 전문가들이 목이 아프도록 외치건만, 들리는지 마는지….

    가을이 오고 단풍이 들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금수강산 단풍구경을 간다. 나무의 산이 있고 나무의 숲이 있기 때문이다.

    조금 있으면 단풍이 든 나무들이 일주일 안에 가진 잎을 다 떨어뜨리는 용감하고도 놀라운 기적을 보게 된다. 내년의 희망과 꿈을 위하여 가진 것들을 미련없이 모두 버린다. 일 년에 한 번씩 세속의 것을 버림으로 내부에 빈 공간들을 만들어 놓는다. 추운 겨울을 몇 달 인내하면 나의 새싹과 순록의 이파리들이 더 많이 놀라운 이 세상을 맞이하리라는 기쁨으로 순례자의 길을 떠난다.

    이파리를 들여다보는 것이 직업인 여성 과학자는 말한다. 눈앞에 보이는 이파리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다른 사람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이파리는 초록색인가? 부드러운가? 싱싱한가? 잎과 줄기 사이의 각도는? 잎은 내 손톱보다 더 작은가? 먹을 수 있는 잎인가? 햇빛은 많은가? 비가 얼마나 자주 내리는가? 살아있나?

    당신의 질문은 관심이 되고 관심은 사랑이 되고 사랑은 숲을 이룬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문복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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