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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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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3) 육척지항(六尺之巷) - 여섯 자 넓이의 골목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8-06-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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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淸)나라 강희(康熙) 황제 때 장영(張英)이란 정승이 있었다. 그의 고향 집이 안휘성(安徽省) 동성(桐城)에 있었다.

    장영의 고향 집이 낡아 고향의 친족들이 수리하게 됐다. 친족들은 원래 땅을 정확히 측량해 찾아서 담을 밖으로 더 내어 쌓으려고 했다. 이웃의 오씨(吳氏) 집안도 세력이 만만찮았는데, 당연히 안 된다고 하며 공사를 못하게 했다.

    마침내 장씨 집안에서 관가에 고소를 했는데, 고을 원은 마음속으로 현직 정승인 장씨 편을 들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오씨 집안에서는 그럴 줄 알고, “만약 그런 식으로 처리하면 우리는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미리 고을원에게 경고를 했다. 그러자 고을원은 판결을 내지 못하고 시간을 끌었다.

    장영의 친족들은 “우리 집안의 정승 어른의 권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저자들이 모르는구먼!” 하고는, 그런 전후 사정을 상세히 적은 편지를 조정에서 벼슬하고 있는 장영에게 보냈다.

    장영은 편지를 받고서 이런 시를 지어 보냈다.

    “천리 멀리 편지를 보낸 것은 단지 담장 때문인데, 그들에게 석 자를 양보한들 무엇이 해로우랴? 긴 성 만리가 지금도 아직 남아 있지만, 그 당시 진시황은 볼 수가 없네.[千里送(어떤 책에는 修자로 되어 있음)書只爲墻. 讓他三尺又何妨. 長城萬里今猶在, 不見當年秦始皇.]”

    편지를 받아본 고향 사람들은 정승의 뜻을 알고, 밖으로 내어 새로 쌓으려던 담장을 도리어 석 자 안으로 들여서 쌓았다. 이웃 오씨 집안에서도 이에 감동하여 담장을 자진해 석 자 안으로 들여서 다시 쌓았다. 장영이 현직 정승의 권력을 이용해 자기들을 억누르면 결국은 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관대하게 먼저 양보하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두 이웃 사이에 6자의 넓은 골목이 생겼다. 두 집안이 대대로 화목하게 지냈다.

    강희 황제가 이 사실을 알고서 골목 입구에 패방(牌坊 : 어떤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서 큰 대문처럼 세운 기념물)을 세워 주고, 그 위에 ‘예양(禮讓 : 예의로 양보하다)’이라는 두 글자를 새기게 했다.

    장영은 이 외에도 백성들을 위해서 좋은 일을 많이 했다. 그의 아들도 정승이 됐으니, 곧 ‘강희자전(康熙字典)’ 편찬업무를 주도한 장정옥(張廷玉)이었다. 그 이후로 후손들이 대대로 관직이 끊어지지 않고, 운기(運氣)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착한 일을 계속하는 집안은 반드시 충분한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라는 주역의 교훈이 그대로 증명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사람들 사이의 모순과 갈등이 너무나 많다. 장영의 관대한 태도에서 잘 배워 좀 더 관대하게 상대를 배려하고, 자신을 잘 관리하도록 해야겠다.

    * 六 : 여섯 육. * 尺 : 자(30. 3센티) 척.

    * 之 : 갈 지. * 巷 : 골목 항.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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