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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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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책이 주는 행복- 백혜숙(시인)

  • 기사입력 : 2018-06-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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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몇 학년쯤인가 시골집 구석방에 틀어박혀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언니가 결혼을 하면서 시골집에 두고 간 금병매, 서유기 같은 전집으로 된 중국 고전소설이다. 그리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사랑의 체험수기 이런 책을 읽었다. ‘책’ 하면 떠오르는 내 어릴 때의 한 장면이다.

    내가 책을 본격적으로 읽은 것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이다. 대학도서관에 책이 엄청나게 많다는 걸 느낀 순간 그곳이 내가 시간을 보내는 유일한 곳이 되었다. 어릴 때 읽었던 금병매가 얼마나 야한 소설인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초등학생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책이란 걸 그때 알았다. 대학에 입학하고 거의 1년을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책을 읽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황석영의 ‘장길산’을 읽으면서 그 방대함과 표현력에 이끌려 처음으로 책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돈을 들여 처음으로 산 책이 바로 ‘태백산맥’이다. 용돈을 모으고 모아 산 책, 두 번을 거뜬히 읽었고, 지금도 기회가 될 때마다 읽는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림책을 알았다. 아이에게 보여주면서 내가 더 행복했다. 그림이 주는 충만감이 얼마나 컸던지, 생활비 아껴 그림책을 샀다. 명목은 아이에게 읽히기 위해서였지만 실상은 내가 보고 싶고 갖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지금은 그림책과 아이들 책을 보면서 삶을 꾸려가고 있다.

    어린 시절 책은 나에게 그냥 읽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속상한 마음을 달래는 나만의 장난감이었다. 책 속에 있는 글을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대학을 다닐 때 책은 친구가 없던 나에게 친구가 되어주었고, 내 현실을 잠시라도 잊게 해주었다. 어른이 된 지금 책은 남아 있는 내 삶에 희망을 주는 보물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함께 꾸려온 독서모임이 있다. 처음에는 회원 수가 20명쯤 되었는데 지금은 다섯 명이 꾸려 가고 있다. 2000년에 시작한 모임이니 올해로 18년째다. 매월 한 권의 책을 정해 함께 읽고, 읽은 느낌을 서로 공유하는 모임이다. 올해는 내가 대학시절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있다. ‘올리버 트위스트, 지킬 앤 하이드, 주홍 글씨,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고, 지금은 드라큘라를 읽고 있다.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면서 읽고 있다.

    책은 시공간을 뛰어넘는 최고의 보배다. 먼저 살다 간 사람들의 지혜와 삶의 방법을 책을 통해서 공유하면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배우게 되니 말이다. 이렇게 읽어서 쌓이고 쌓인 경험과 삶의 가치는 개인의 지혜가 되고, 이 개개인의 지혜가 모여 살 만한 세상을 만들게 될 것이다.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책의 해’이다. 도서관에 책을 읽는 사람이 넘쳐나고 책으로 소통하며, 책에서 즐거움과 재미를 찾고 희망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선정한 것이다. 책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다양한 문화행사가 도서관을 통해 펼쳐지고 있다. 집 근처 도서관을 찾아 책과 함께하는 행복한 문화행사에 참여해서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보면 좋겠다. 그래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나면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듯이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게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하고 자연스럽게 책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함께 가져본다.

    백혜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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