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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환승이야기 2] 두바이에서 히잡을 벗으며- 박선영(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18-05-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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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공노선의 국제적 환승지, 두바이. 두바이는 석유가 발견되면서부터 본격적인 현대도시로 거듭난 역사가 길지 않지만, 지리적 요건으로 인한 오랜 교역의 흔적을 축적해온 곳이다. 아랍어로 ‘메뚜기’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두바이 공항에서, 검고 긴 옷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여인들을 보다가 이 글을 쓴다.

    많은 이들이 이곳 두바이에서 비행기를 갈아탄다. 두바이 인근의 중동국가를 방문하며 히잡을 둘렀던 여자들이 머리를 드러내며 후련해한다. 방문지에서 기념 삼아 히잡을 구입하기도 했을 테지만, 갖고 있던 머플러를 대강 감고 있다가 두바이에 도착하면 풀어서 가방에 집어넣는 것이다. 두바이에서는 이슬람 문화가 자리잡혀 있어도 방문객들에게 히잡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래도 중동 출신 여성들은 히잡을 쓴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종교문화적 이유로 머리카락을 가린 여성들과 그렇지 않은 여성들의 얼굴들이 서로 스치는 풍광이 이색적이다.

    무슬림 여성들의 눈에는 히잡을 벗어던지는 타국의 여성들이 어떻게 비쳐질까. 언제나 히잡, 혹은 심지어 발목까지 내려오는 차도르를 드리워야만 하는 그녀들도 솔직하게는 벗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지, 아니면 히잡을 신체의 일부처럼 여기고 몸을 가리는 것을 마음속으로도 당연시하는지 궁금해졌다. 아마도 그녀들이 비이슬람권 국가에 가게 되더라도 늘 하던 대로 하는 경우가 더 많겠지만, 신앙만으로 설명할 순 없을 것 같다.

    중동의 여성들이 히잡을 사용한다고 해서 머리카락을 손질하는 것에 소홀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모발용 제품도 충분히 잘 팔리고, 미용실에서 파마와 염색을 한다고. 그렇지만 그 아름다움을 감추어야 하는 도구인 히잡을 쓰지 않는 것은 이슬람 사회의 불법이다. 그녀들의 취향과 개성은 히잡의 색깔이나 무늬로 번역되고 있는 듯해 보인다.

    히잡을 벗고 살길 원한다는, 21세의 이란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히잡과 함께 자신을 둘러싼 굴레를 벗고,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삶을 얻고자 했다. 그러나 중동에서 다른 나라로 가는 경유지인 두바이에 머물 때까지는 히잡을 계속 쓰겠다고 한다. 비행기 환승지인 두바이에서 그녀가 맨머리를 드러내면, 불편한 시선을 던지는 남성들이 더 많기 때문이라고.

    그녀가 동경하는 나라, 자신에게 보다 솔직할 수 있는 나라인 한국에 가게 되면 히잡을 벗고 지내겠노라는 독백에 대해 유심히 들어볼 필요를 느꼈다. 한국에서는 오히려 히잡을 두르고 다니면 오히려 더 많은 시선을 불러들일 것이므로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겠다는 이야기였다. 히잡의 본질에 대해 얼마나 오랫동안 고민하고 스스로와 투쟁했을까.

    수많은 여성들의 욕망과 신앙, 그리고 자유와 규범 같은 단어들이 두바이에 착륙했다가 이내 떠나간다. 두바이라는 환승의 공간에서 낮과 밤의 교환이 이루어질 때, 히잡에 대한 생각들이 행동으로 경유되는 것을 지켜본다.

    더운 바람 한 자락이 실뭉치처럼 뒤엉켰다가 풀리면서 날아왔다. 그리고는 시차를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내 머리에 얹힌 히잡을 벗겨주었다. 출발지에서 맞춘 시계가 도착지의 시간과도 아직은 맞지 않는 중간쯤의 정류장, 두바이. 이곳에선 오늘도 서로 다른 목적지를 가진 비행기들이 무수히 뜨고 내린다.

    박선영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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