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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여행, 그 힘에 대하여- 정이경(시인)

  • 기사입력 : 2018-04-2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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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TV를 보게 될 때가 있다.

    예전에 없이 여행 프로그램이 부쩍 많아졌음에 놀랐다. 한때 먹방(?)이 화면을 다 차지하다시피 하더니 요즘은 여행이 대세인 모양이다.

    여행 프로그램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예전의 여행 프로그램이 다분히 시사적이거나 교양 쪽이었다면 요즘은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이토록 각기 다른 성격의 여행 프로그램이 방송에서 자리 잡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얼마 전 외사촌 동생과 나눈 대화를 떠올려본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 달 넘게 다녀왔다고 했다.

    그 동생은 대학 시절 소위 말하는 운동권 남학생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졸업 이후의 사회활동도, 지금의 삶도 그 방면으로 이어가고 있다. 그런 동생이 어떤 이유로 순례길을 걷겠다고 마음을 먹었는지, 그 길 끝에 무엇을 느끼고 얻게 되었는지를 다그치듯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생은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이 어릴 적 읽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책 속, 그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또 걷는 내내 만난 사람들과는 국적과 나이, 직업 따위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고, 처음 만난 낯선 사람들인데도 아무런 설명 없이도 모두가 오래 알아온 사람들처럼 친근한 동행자가 되더라고 했다.

    걷는 도중 브라질에서 왔다는 동행자가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코스별로 순례길을 걷고 있다. 그래서 벌써 몇 차례나 완주도 했다. 이런 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왜 유독 한국 사람들이 많은지, 청년들을 포함해서 중년들도 꽤 많이 보았다. 그것도 하나같이 전투적으로 걷는 모습들이 참으로 궁금했다”고.

    동생은 “아마도 그들은 행복하다고 여겨지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일에 쫓기고 시달려야 하는 사회생활로 떠나오지 않았을까”라고 답을 했단다.

    그렇다면 너나없이 우리는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하여 여행을 하는 걸까? 아니면 행복한 사람들만이 여행을 떠나는 것일까?

    떠나기 전과 달라진 게 있느냐의 답은 너무나 간단명료하였다. 그런 건 전혀 없다고. 그렇다면 외사촌 동생의 여행은 실패한 여행일까?

    지난해 기회가 닿아 나도 걷는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 길에서 만나고 스친 사람들에게 자꾸 마음이 갔다. 열악한 환경에도 욕심이 적은 사람들이었다. 청소년기 시절부터 포터(짐꾼)나 쿡(요리사)의 보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며칠을 함께 지내면서 태생적으로 착한 그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두 번이나 안나푸르나를 찾았고, 올해는 여름휴가까지 앞당겨 아프리카엘 갔다 왔다. 삶의 주 무대가 되는 고산 (高山)인 킬리만자로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속에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얻었냐고 묻는다면 나도 외사촌 동생의 말대로 여행을 떠나기 전과 다녀와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단지 지금 이 순간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뿐이란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여행이란 결국 자신이 속해 있는 모든 구조적인 것을 벗어나 아름답거나 위대한 자연환경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끝없이 이어지는 길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나의 삶을 다시금 들여다보는 일이 아닐까? 이미 다녀온 곳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떠올려 보는 여행의 후일담이야 길지만.

    정이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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