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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환승이야기 1] 파리에는 로마가 있다- 박선영(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18-04-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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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을 타면 급행이 있고 완행이 있어, 멀리 가게 될 때는 주로 급행을 선택해서 타곤 한다.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기 때문에 급행열차는 언제나 완행보다 붐비기 마련이다. 그래서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면 앉아서 편히 가기 위해 느리더라도 완행을 타기도 한다.

    목적지에 급행열차가 정차하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완행을 타는 쪽이 오히려 시간이 절약될 때도 있다. 급행을 탔다가도 완행으로 갈아타야 하면 도중에 대기시간이 걸리거나, 어쩔 수 없이 더 멀리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므로.

    그러니까 지하철을 탈 때 급행열차와 일반열차 간 환승을 해야 한다면 그런 변수를 염두에 두는 게 좋다.

    이동의 완급조절에 실패한 어느 날, 정해진 시간 안에 도착해야 한다는 조바심을 내려놓고 비로소 여유를 가져본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임을 우리는 안다. 일반역에서 갓 승차한 사람, 그리고 다른 호선을 타고 왔다가 환승역에서 올라탄 사람들이 열차의 한 칸 속에서 뒤섞인다. 그들은 이제 방향의 공통점을 갖지만 표정과 옷차림과 사연들이 각양각색일 뿐더러 다음 역에 당도하자마자 금세 재분류된다.

    급행열차에서 내려 완행열차로 환승하기 위해 잠시 기다리며 생각한다. 프랑스 파리의 지하철 2호선을 타게 되면 Rome, 이탈리아의 수도 이름을 딴 지하철 역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곳을 지나치는 짧은 순간도 사람들에게마다의 의미는 다양할 터. 로마에 다녀와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다음 역까지의 몇 분 동안 추억에 젖게 될 것이고, 로마역 인근에 살며 매일 그곳을 오가더라도 그 역의 이름이 유래된 지명인 실제 로마엔 평생 가보지 못하는 누군가도 있으리라.

    파리의 지하철을 타고 있는 여행자의 귀에, ‘이곳은 로마입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들렸던 것은 인상적인 기억이다. 어디 그뿐인가. ‘빅토르 위고’라는 역을 지날 때 떠올리게 되는 작가는 프랑스 출신이니만큼 역시 문화예술의 도시답다며 그러려니 하게 되지만,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라는 이름의 역이 역시 파리 지하철의 노선에 존재한다는 것은 우연일까.

    이렇게 파리의 지하철은 역의 이름만으로도 생각의 지도 위를 누비게 했다. 내가 가는 방향은 정해져 있었을지라도 그 이동의 과정은 여행 속의 작은 여행이 된 것이다. 세상 모든 도시의 모든 역들이 저마다의 역사와 이야기를 지니고 있을 테니,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잠시 속도를 잊고 가는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동네의 마을 버스를 타면서 거치는 작은 정류장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목적지를 가지고 이동하는 동안 수많은 장소들을 관통한다. 그곳들이 각각 품고 있을 의미들은 우리의 관심만큼 빛날 것이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누리는 지점이 곧 생각의 환승역이 될 것이다.

    방향을 기억하되, 앞만 보고 달려가지 말고 지금의 계절을 읽자. 거리의 냄새와 어린아이들의 취향을 배우자. 제 힘으로 자라나는 식물들을 관찰하자.

    그것들이 쌓여서 결과 켜를 이루면, 언젠가는 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줄 이정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박선영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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