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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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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공간 (22) 마산 LP카페 '해거름'

턴테이블이 돌면 추억도 음악이 된다
3호점 낼 만큼 번성하다
1979년 문 열어… 주변 LP카페 모두 사라지고

  • 기사입력 : 2018-04-19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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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옛 추억을 향유하고 아날로그 감성으로 충만한 복고 코드가 대중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당시 유행한 가수를 소환하는 TV 예능프로그램과 7080콘서트 공연, LP판으로 음반을 제작하는 가수들이 생겨났다. 덩달아 LP카페, 음악다방, 음악감상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서울, 대구 등 대도시에서는 DJ가 음악을 틀어주는 음악다방, LP카페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LP가 성행하던 1980년대 당시 경남에서도 LP카페, 레코드 가게의 인기는 대단했다. 경기 부흥 덕에 창동엔 건물마다 책방과 다방, 옷집, 술집, 레코드 가게가 꽉꽉 들어찼다. 그중에서도 무아, 르네상스 등 음악다방을 찾는 이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창동에 발길이 끊기면서 점포세를 써붙인 가게가 늘어나고 찾는 이가 줄어들면서 쇠잔한 곳으로 전락했다. 숱하던 LP카페도 하나둘 종적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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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해거름. 턴테이블 위 LP판이 돌아가고 있다./성승건 기자/



    마산에서 아직까지 LP를 마음껏 들을 수 있다는 ‘해거름’을 찾았다. 마산 LP카페의 효시로 불리는 이곳은 칵테일 하우스 해거름이라는 이름으로 1979년 문을 열었다. 3호점을 내고 이곳에서 양성한 바텐더들이 마산, 창원 각 지역으로 흩어졌을 만큼 번성했단다. 지금은 1호점 한 곳만 남아 같은 자리에서 40년 동안 한결같이 추억과 음악으로 손님을 맞고 있다.

    창동 네거리에서 남성동 파출소 쪽으로/조금만 내려가면/반세기도 훨씬 지난 어느 해인가/자본금 오원으로 시작했다는/오행당 약국//그 오행당 약국 앞에는 오래전부터 있었던/돌채다방 골목/불경기의 여파로 몸부림치다가/소문도 없이 돌채는 없어졌는데//골목으로 들어서면/오스마 아줌마가 경영하는 양품점을 지나/해거름 앞에 멈추어서지는 발걸음/그곳에는 약 일 년 전에 문을 연/고모령 고개가 아니 고모령 주점 -‘이선관 시인 고모령 중 일부’-

    창동을 대표하는 이선관 시인이 고모령에 대한 시를 읊으면서 ‘해거름’을 언급할 만큼 그 역사는 오래됐다. 허름한 건물 2층에 자리한 ‘해거름’은 올라가는 16개의 계단부터 시작된다. 문을 열면 66㎡(20평) 남짓한 공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5개 테이블과 바와 마주한 15개의 의자가 놓여 있다. 한눈에도 제법 묵은 티가 난다. 여느 가게에 들어서면 들려오는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 대신 잔잔한 음악이 손님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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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해거름 입구.



    이곳의 ‘지킴이’를 자처하는 고굉무(54) 사장은 오픈 당시 인테리어 그대로라고 했다. 고씨는 “2년 전쯤 의자 천갈이만 했고 나머지는 1대 사장인 정의교씨가 문을 열었던 그대로예요”라고 말했다. 손님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테이블, 의자 하나 바꾸지 않았단다. 사장 혼자 만드는 공간이 아니라 드나드는 모든 이의 손때가 묻어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씨는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는 1981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손님이 만들어준 건데 칵테일 메뉴이름과 술 이름 등이 그려져 있어요. 알록달록 촌스러워서 원래 주인이 2005년쯤 떼버리려고 했답니다. 그때 손님들이 가게 상징 같은 포스터라며 만류해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네요”라며 웃었다. 주인의 말대로 오래된 이 포스터에는 ‘멕시칸 사라다’ ‘T.3-4243’ ‘칵테일 하우스’ 등 가게를 설명하는 단어들이 촘촘하게 새겨져 있다.

    고씨는 군대 갈 1985년 무렵 친구가 아르바이트하던 이곳을 처음 찾았다. 당시 막걸리 한 통이 300원일 때 해거름에서 파는 칵테일이 2500원이었으니 큰맘 먹고 들어섰단다. 그때 원래 주인장과 인연이 되어 해거름을 종종 찾던 그는 2008년 갑자기 큰 사고로 주인이 가게를 운영할 수 없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맡게 됐다. 당시 의류업을 하던 고씨는 음악 전공자도 아니고 칵테일을 만들어본 적도 없었다. 게다가 창동은 이미 침체기였고 예술촌도 생기지 않았을 때라 가게를 맡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여길 찾는 사람들은 다 사연이 있거든요. 여기가 없어지면 그 추억들도 사라지지 않겠어요? 그런 객들을 위해 이런 곳 하나쯤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운영하기로 결심했습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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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거름 지킴이 고굉무씨가 LP판을 틀고 있다.



    그는 LP음악의 매력을 들려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좁은 통로를 지나 턴테이블 앞에 서서 태미 와이넷의 ‘stand by your man’ LP를 집어 들었다. 입으로 가볍게 후후 불더니 턴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몇 번 들리더니 노랫소리가 울려 펴졌다. 잡음을 잡으려는 듯 진공관 앰프를 만지작거리고는 프리앰프로 소리를 맞췄다. 최근 인기 있는 드라마 OST로 사용되면서 귀에 익숙한 노래인데도 LP소리는 달랐다. 바로 곁에서 연주하는 듯 묵직하고 쨍쨍한 소리가 가게를 채웠다. CD나 MP3로 듣는 것과 또 다른 질감을 담고 있었다. 해거름이 소장한 LP판은 3000장가량 되며 스피커와 턴테이블, 진공관 앰프는 모두 근처에 있는 한 치과의사가 좋은 음악을 고객들에게 들려주라는 의미로 기증한 거란다.

    고씨는 단골손님이 오면 인사를 하지 않는다. 대신 손님이 신청했던 노래를 기억해내 틀어준다. 어떻게 기억하냐는 물음에 그는 신청곡 종이들과 고객노트를 꺼내 보였다. “솔직히 모든 손님을 다 기억할 수는 없어요. 그래도 손님 특징과 신청곡들을 상세하게 써 놓고 웬만하면 틀어주려고 노력합니다.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더라고요.” 신청곡을 받은 리퀘스트 종이도 버리지 않고 다 모아둔다. 손님들의 추억이 담겨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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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P판이 빼곡히 꽂혀 있다.



    그는 작년에 이 노트로 손님이 감동받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미국에 이민간 지 20년쯤 된 중년의 남자분이었는데 아내와 연애할 때 해거름을 자주 찾았답니다. 그때의 추억이 생각나 다시 방문해 카펜터스의 ‘Yesterday once more’를 신청했는데 이를 기억했다가 틀어드렸거든요. 앉자마자 이민간 뒤 고생한 아내 생각이 난다며 눈물을 쏟더라고요. 그리고는 연신 당시의 추억을 되새기게 해 고맙다며 100달러짜리 지폐를 꺼냈어요. 3년 안에 아내와 꼭 찾겠다며 증표로 돈을 갖고 있어달라고요. 손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벽 한쪽에 붙여놓은 겁니다”고 말했다.

    테이블 자리 벽에는 포스터가 몇 장 다닥다닥 붙어있다. ‘청춘극장’ ‘너의 역사’ 등 지역 극단이 무대에 올리는 연극 포스터들이다. 고씨는 “극단의 연극인들이 가게를 찾는 단골이기도 하고 지역 예술인들이 힘냈으면 하는 의미로 포스터를 붙여 놓습니다. 2012년 극단 마산이 기획한 ‘청춘극장’ 포스터는 우리 가게를 배경으로 찍기도 해 의미가 더 있고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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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거름에서는 음악 장르를 고집하지 않는다. 트로트부터 클래식, 재즈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고객이 찾는 음악은 모두 틀어준다. 세상엔 저급한 음악은 없다는 주인장의 음악적 지향점 때문이다. 간혹 같은 시간대에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이곳에 머무는 때가 있는데, 주인은 세대의 격차 없이 공감할 수 있는 공간으로 쓰임이 이곳의 존재 이유라고 말했다. 때문에 백년가게를 만드는 게 꿈이란다. 그는 “일본처럼 가업으로 잇지 못하겠지만 이 공간을 좋아하고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이가 나타난다면 기쁜 마음으로 물려주고 싶어요. 이런 공간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

    LP로 옛 노래를 듣는 이유는 좀 더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서가 아니다. 옛 정취와 음악에는 추억을 이끌어 내는 힘이 있어서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켜켜이 쌓인 옛 시간과 느낌을 단숨에 불러들여 뭉클하게 만들어준다.

    인터뷰를 마치고 계단을 따라 내려오는데 요즘은 보기 힘든 입체형 네온사인 간판에 불이 켜졌다. 허름한 그 간판이 지나가는 객의 발을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해거름 질 무렵 술 한잔, 음악 한 곡 합시다.”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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