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마음을 다쳐
상처 난 마음을 버릴 곳 없는 자는
마라도로 가라
모슬포 항에서 뱃길로 삼십리쯤 더
남으로 들어가면
상처받은 사람들 업어줄
움츠린 등 넓은 섬 하나 있다
그 섬에 뱃머리가 닿으면
제일 먼저 바람이 검문을 한다
신분증 대신 시커멓게 탄 가슴을 보여주고
바람이 등 떠미는 곳으로 올라가라
올라간 그곳에 절벽이 있다
그 위에서
아래로 던져진 마음을 보라
허옇게 뼈까지 부서진 사랑을
물어뜯는 파도가 있다
추락한 꿈들이 뇌사상태일 때
마라도의 배들은 고동을 울려
그 영혼을 달랜다
무엇이든 끝에 서본 자 만이
시작을 꿈꿀 수 있다
☞ 우리나라 최남단의 섬인 ‘마라도’ 이미지를 차용해 관념시의 위험을 깨끗이 극복해낸 시인의 기량이 돋보이는 이 시를 읽으면 바람도 없이 화르르 쏟아지던 벚꽃들이 떠오른다. 피었는가 싶으면 홀연히 져버리는 꽃잎들을 볼 때마다 벚꽃은 벚나무의 내면의 상처일 것이라고 벚나무에게 절벽은 제 몸의 밖이므로,‘상처 난 마음을 버릴 곳’을 찾아 ‘신분증 대신 시커멓게 탄 가슴을 보여 주’며 마라도의 절벽으로 가는 사내처럼, 지금 제 상처를 몸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 중이라고 상상했다. 상처 없는 생이 어디 있으랴 ‘무엇이든 끝에 서본 자 만이/시작을 꿈꿀 수 있다’고 아픈 상처들일랑 절벽 아래 ‘파도의 밥으로 던져’버리고 다시 시작하자고, 절벽 끝에 서 본 사내가 육성으로 불러주는 희망가가, 혹한을 지나온 이 봄 마음의 보약 한 첩 선물받은 듯 든든하지 않은가. 조은길 시인